같은 작품도 궁합 맞는 공간 만나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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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미술관 ‘플라스틱 가든’전

최정화 작가가 고무 슬리퍼 100개를 똬리처럼 이어 붙인 설치작품 ‘신바람’(2015년·앞쪽)과 중국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새 빨래판과 바꿔 얻은 헌 빨래판 100개를 벽에 붙인 ‘중국식 백과사전’(2015년).
최정화 작가가 고무 슬리퍼 100개를 똬리처럼 이어 붙인 설치작품 ‘신바람’(2015년·앞쪽)과 중국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새 빨래판과 바꿔 얻은 헌 빨래판 100개를 벽에 붙인 ‘중국식 백과사전’(2015년).
흐으…. 엉엉….

1층 전시실 끄트머리. 한 남자가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과 연결된 중층 전시실에 놓인 정승 작가(40)의 미디어설치작품 ‘우는 남자’(2015년)가 내는 소리다.

석고, 나무, 금속으로 만든 3.5m 높이 뼈대에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 8대를 정면, 측면, 후면으로 돌려가며 나눠 붙였다. 각 화면은 남자의 얼굴, 손, 어깨, 등, 팔, 귀를 가득 채워 보여준다. 작품 주위를 한 바퀴 둘러 걸으면 알 수 있다. 뒤통수, 등줄기, 손가락도 늘 함께 오열하고 있음을.

4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스트 브리지―플라스틱 가든’전은 이 작품을 비롯해 한국 작가 5명과 중국 작가 5명의 작품 21점을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정승의 ‘우는 남자’를 지난해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뉴 로맨스’전에서 만났던 이라면 한 번쯤 들러보길 권한다. 관람객을 만나는 공간에 따라 한 작품의 감흥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현에서 이 작품은 한국과 호주 작가 14명이 내놓은 각양각색 미디어 작품 사이에 맥락 없이 비집고 들어앉아 있었다. 남자의 울음소리는 전시실에 떠다니던 수많은 소리에 뒤섞여 묻혔다.

누군가 눈앞에서 소리 내어 흐느낄 때 당신은 그의 무엇을 보는가. 딱 어울리는 전시공간을 만난 정승 작가의 미디어설치작품 ‘우는 남자’는 사람이 눈과 입으로만 울지 않음을 찬찬히 살피도록 해 준다. 토탈미술관 제공
누군가 눈앞에서 소리 내어 흐느낄 때 당신은 그의 무엇을 보는가. 딱 어울리는 전시공간을 만난 정승 작가의 미디어설치작품 ‘우는 남자’는 사람이 눈과 입으로만 울지 않음을 찬찬히 살피도록 해 준다. 토탈미술관 제공
토탈미술관의 중층 전시실은 작은 무대를 닮았다. ‘우는 남자’는 계단식 객석 앞 무대 복판에 놓여 있다. 맞춤옷처럼 딱 떨어지는 규모의 공간을 만난 모니터 속 남자는 마음 놓고 펑펑 운다. 처음에 작가는 객석 위쪽에 움직임을 가진 다른 작품 두 개를 더 놓고 싶어 했다. 일단 설치했다가 미술관 전시팀과 상의해 하나로 줄였다. 다행스러운 선택이다. 다른 소리가 섞여들어 흐느낌을 흩어놓지도, 울음소리가 다른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관람객은 출구로 올라오며 다시 한 번 벽면 틈새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깔끔한 마무리다.

은근하고 세심한 배려 없이 직설을 턱 꺼내놓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꼭 권할 만한 전시는 아니다. 하지만 토탈미술관 공간이 가진 유려한 리듬을 잘 받아 살린 작품 배치는 무표정한 화이트큐브 전성시대에 만나기 쉽지 않은 즐거움을 안긴다. 목조 슬래브 아래 지하 전시실 벽에 걸린 저우원더우 씨의 설치물 ‘베이징 에어’는 슬래브 아래로 노출된 버팀목과 호응을 이뤄 ‘제자리 찾아 걸린’ 작품의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 베이징에서는 같은 작품들이 990m²의 직육면체 전시실에 나열돼 있었다.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는 “진양핑 작가의 유채화 두 점이 베이징에서는 아예 눈에 띄지도 않았다. 최정화 작가 설치작품 옆 벽면에 나란히 걸어놓으니 크게 달라 보여 많이 놀랐다. 이세현 작가의 그림도 다른 전시에서보다 한층 가깝게 다가가 살필 수 있게 했다. 올해 개관 24년을 맞은 이 공간이 가진 힘을 새삼 확인했다”고 말했다. 02-379-3994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토탈미술관#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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