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소낙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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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동서고금의 숱한 시인, 문장가들이 눈을 노래했다. 대부분은 환희, 신비, 순수, 사랑 등의 감정으로 눈을 표현했다. 그러나 폭설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폭설은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이다. 우리말로는 소나기눈, 또는 소낙눈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소낙눈과 폭설은 차이가 있다. 소낙눈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기에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진 않는다. 그러나 폭설은 며칠씩 내리기도 해 지난번 제주공항 마비사태처럼 하늘길과 뱃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눈은 모양과 내리는 모습에 따라 종류가 많다. 함박눈은 굵고 탐스러우며, 가루눈은 기온이 낮고 수증기가 적을 때 내리는 가루 모양의 눈이다. 싸라기눈은 쌀알 같은 눈이며, 진눈깨비는 비가 섞여 내리는 눈이다. 눈의 종류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눈과 더불어 살아가는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종류를 52가지로 나눠 부른다.

눈의 세계엔 재미난 표현도 수북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은 ‘숫눈길’이다. 그 길을 처음 밟아본 희열을 기억하는 분도 많으리라. 송창식이 불렀던 ‘밤눈’의 노랫말처럼 ‘한밤중에 소리도 없이 내리는 눈’이 밤눈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탄성을 터뜨리게 만드는 눈은 ‘도둑눈’ 또는 ‘도적눈’이다. ‘자국눈’은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눈, ‘길눈’은 한 길 높이가 될 만큼 많이 쌓인 눈이다. 초겨울에 들어서 조금 내린 눈은 ‘풋눈’이다. 북한에서는 복을 가져다줄 눈이라는 뜻으로 겨울에 많이 내리는 눈을 ‘복(福)눈’이라고 한다.

‘눈꽃’은 나뭇가지에 꽃이 핀 것처럼 얹힌 눈이다. 말 그대로 설화(雪花)다. ‘서리꽃’은 유리창에 서린 김이 얼어붙어 생긴 꽃 같은 무늬이고, ‘상고대’는 서리가 나무나 풀에 내려 눈같이 된 것을 말한다.

아 참, 순백의 골목을 걸으며 남긴 건 발자욱일까, 발자국일까. 시어(詩語)로 ‘발자욱’을 쓰기도 하지만 표준어는 ‘발자국’이다. 북한에서는 둘 다 쓰고 있다. 혹시 ‘눈석임한다’는 표현을 아시는지. 이는 쌓인 눈이 속으로 녹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눈석잇길은 질척질척해진 길이다. 이런 길에는 발자국을 남겨도 그리 즐겁지 않다.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김광균 시인의 설야(雪夜)를 다시 읽고 아직도 누군가가 그립거나 마음속에 등불을 켜고 싶어진다면 당신은 여전히 청춘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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