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의 아오모리. 북방의 항구는 이렇듯 금방 어두워진다. 그리고 겨울이면 늘 눈에 덮이고. 그래서 이 등롱의 불빛은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겨울 아오모리 여행은 이런 북방의 정취를 즐기는 여정이다. 사진은 아오모리대교 아래의 부두 산책로. 아오모리 시(일본 아오모리 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아오모리는 그야말로 산해진미의 고장이다. 우선 동·서·북의 세 바다(동해·태평양·무쓰 만)에서 참치와 넙치, 가리비, 성게와 더불어 다양한 어종이 무진장 난다. 또 기름진 대지에는 야채와 과일이 풍성하다. 특히 사과와 마늘은 일본에서 수확량이 가장 많다. 아오모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을 알아본다.
한 덩어리에 뱃살(오토로) 옆구리살(주토로) 등살(아카 미)이 모두 들어있다.
냉장한 혼마구로의 살. 왼쪽부터 등살(아카미) 옆구리 살(주토로) 뱃살(오토로)이다.
료칸 사가의 ‘가자마우라 안코 런치세트’ 상차림. 노우케동@후루카와시장
아오모리에선 혼마구로를 맛보기가 어렵지 않다. 산지이다 보니 유통량이 많아서다. 가장 쉽고 편리하고 또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위치는 아오모리 철도역에서 5분 거리. 간판은 ‘아오모리 교사이(魚菜)센터’지만 현지에선 ‘후루카와시장’으로 더 잘 통한다. 이곳은 점포 수십 개의 자그만 실내수산·청과물시장.
그런데 여기엔 아주 특별한 음식이 있다. ‘노우케(のうけ)동’이라는 ‘DIY 생선회덮밥’이다. ‘DIY(Do It Yourself)’는 ‘스스로 만들기’. ‘노우케’란 ‘물건을 집어서 놓다’는 뜻. 즉 내가 먹고 싶은 해물을 각 점포에서 직접 사서 밥 위에 올려 먹는 자작 회덮밥이다. 시장 안에는 식사용 테이블도 갖춰져 있다. 그래서 점포마다 즉석에서 먹을 수 있도록 먹음직스러운 해산물을 정성껏 좌판에 진열해놓고 있다. 구입은 쿠폰으로 한다. 쿠폰은 묶음(10장과 5장)으로 판다. 역시 혼마구로가 가장 비싸다. 가장 맛있는 뱃살(오토로)은 3장, 옆구리살(주토로)은 2장을 내야 한다. 밥과 다른 생선살은 1장. 성게 알(우니)과 연어 알(이쿠라), 오징어와 청어 알에 계란부침 등 초밥에 얹는 것은 모두 다 있다. 그러고 보니 사서 먹는 방식이 우리나라 통인시장과 비슷하다.
상인 중엔 할머니가 많은데 일본서 좀처럼 보기 힘든 ‘덤 문화’가 여기선 한국 이상으로 후하다. 생선회는 물론이고 디저트로 쪼개어 파는 사과도 맛보라고 담아주었다. 아쉬움이라면 시장 안에선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점. 노우케동은 2010년 아오모리 신칸센 개통에 맞춰 상인들이 스스로 개발한 아이디어로 아오모리를 찾는 관광객에게 신선한 해산물을 싸고 다양하게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쓰가루 향토가정식@콘미도
나는 노우케동으로 혼마구로를 맛봤지만 이것으론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오마마구로를 맛보기로 하고 아오모리 시내 홈레스토랑 ‘콘미도(Conmideux)’에 예약했다. 예술가 저택의 품격이 느껴지는 부유한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곳이다. 직원이라곤 오자키 유 씨(43)와 그녀의 어머니뿐이다. 두 사람이 각각 접객과 조리를 맡아 예약손님만 접대한다. 음식은 아오모리의 향토음식. 맛은 소박하지만 품격은 가이세키 요리 못잖고 스타일은 현대적이다. 고가구 등으로 멋을 낸 실내 역시 식당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콘미도란 이곳 쓰가루 지방의 사투리로 ‘맞아! 바로 그 맛이야’란다. 이날 콘미도의 주방에선 오마마구로 한 덩이(800g)를 회로 썰어 냈다. 뼈를 발라 얻은 반쪽 몸통을 가로로 두툼하게 잘랐기 때문에 빨간 아카미(赤身·등살)와 분홍빛 주토로(中とろ·옆구리살), 그리고 지방질이 섞여 하얀 오토로(大とろ·뱃살)가 한 덩이에 모두 들어 있었다. 갓 잡은 참치를 맛보기는 이게 처음. 맛도 맛이지만 탱글탱글한 살을 씹을 때 느끼는 발랄한 식감이 더 인상적이었다. 지방이 많아 가장 맛있다고 하는 오토로보다 나는 지방이 적당히 분포된 주토로가 훨씬 맛있었다.
가자마우라의 아귀런치세트
오마자키 남쪽의 시모키타 반도 북단 가자마우라에서 특별한 생선요리를 맛봤다. 아귀 회다. 아귀는 우리도 즐기는 생선이지만 회로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횟감이라면 우선 맛있어야 하고 신선해야 한다. 하지만 아귀는 그럴 만한 생선이 아니다. 흔한 데다 육질과 맛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기에. 그런데 가자마우라 주민은 그 아귀로 점심세트 메뉴를 개발했다. 살은 발라 회와 나베(찌개)로, 간은 찜을 쪄낸다.
그런데 맛은 역시 별로다. 담백함 외엔 당기는 맛이 없이 밋밋하다. 하지만 간은 달랐다. 프와그라(거위 간)와 같은 독특한 맛이 있다. 일본 술 안주로 좋았다. 나베는 미소(일본된장)를 풀어 야채와 함께 테이블 위에서 끓여 먹는다. 이걸 맛본 곳은 가자마우라의 시모후로 온천가에 있는 료칸 ‘사가’의 식당. 온천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아귀는 일본어로 ‘안코(鮟鱇)’. 수심 400m의 심해어종이라 통상은 한 시간 이상 배를 타고 나가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 가자마우라에선 수심 15m에 잡힌다. 기노시타 히로미 씨(가자마우라 촌 어업담당)는 “이곳의 특별한 해저지형 덕분”이라며 “포구 가까이서 잡다보니 회로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귀의 제철은 12∼3월. 가장 맛있는 간이 이때 가장 커지기 때문이다.
아오모리 명물 호타테 맛보기
‘호타테(帆立)’라고 부르는 가리비는 아오모리의 특산물. 무쓰 만에서 대량 양식되는데 그 맛이 달고 감칠맛이 좋아 인기다. 그래서 음식조리용으로 쓰기보다는 회나 즉석화로구이로 즐긴다. 그 살만 도려내 건조시켜 파는 곳도 많은데 선물로 아주 인기다. 이걸 끓이면 깊은 맛의 국물을 얻을 수 있다. 그 호타테를 즉석에서 잡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아오모리 역 근처 ‘호타테 고야’라는 식당이다. 여기선 수조 안의 호타테를 낚시로 잡는다. 시간은 3분, 요금은 500엔. 낚은 것은 모두 손님 몫인데 최고 기록은 17마리. 낚기가 쉽지 않지만 낚지 못해도 실망할 건 없다. 2개는 회나 즉석구이로 맛보게 한다.
프로테산 와규@아리타
와규(일본 쇠고기)와 데판야키(철판구이)는 일본식 스테이크의 대명사다. 그런데 아오모리에는 듣도 보도 못한 와규로 프렌치 스타일의 디너코스를 제공하는 데판야키 식당이 있다. 무쓰 시내 ‘아리타(Arita)’라는 곳인데 ‘니치니치’라는 제약회사가 소유한 산마모루 와이너리가 직영한다. 제약회사와 와이너리의 조합도 묘하지만 직영이라니 더 관심이 가는 데 그 핵심은 ‘프로테산(유산균)’을 넣은 사료로 키운 소의 고기(프로테산 와규)다. 이 프로테산 와규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은 일본 전국에 6곳뿐이다.
그중 내가 찾은 무쓰 시내의 아리타는 그 1호점. 나는 헤드셰프 시부타니 가쓰야 씨(42)가 요리하는 철판 앞 테이블에서 프로테산 와규를 살폈다. 그 등심살엔 지방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와규와의 차이는 외관보다는 기름에 있었다. 구운 와규의 기름부위가 아주 부드러웠고 불에 녹아 산화된 후에도 지방 특유의 역한 냄새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고기에선 산뜻한 풍미가 느껴졌다.
그는 데판야키 경력 25년의 장인. 세트로 내는 전식과 후식은 어느 프렌치 레스토랑 못잖을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역시 최고는 볶음밥이었다. 프로테산 와규의 지방부위를 듬뿍 잘라 철판에서 완전히 녹인 뒤에 남는 섬유질만으로 마늘과 함께 밥을 볶았다. 데판야키와 마찬가지로 산뜻한 맛이 일품이었다.
summer@donga.com
▼아오모리-오마자키 이동수단 Tip▼
아오모리 여행길에서 혼슈 최북단 오마자키를 다녀오는 방법은 세 가지. 렌터카, 철도, 쓰가루 해협 페리 이용이다. 두세 명이 함께 간다면 렌터카가 좋다. 빌릴 때는 차종이 무엇이든 도요타 브랜드를 권한다. 올해부터 도요타 차량엔 한국어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서다. 혼자 간다면 철도가 좋다. 아오모리철도(아오모리∼노헤지 역·44.6km)와 JR오미나토센(노헤지∼오미나토 역·58.4km), 버스(오미나토 역∼무쓰∼오마자키·47km)를 바꿔 탄다. 페리는 하코다테를 다녀올 경우의 옵션이다. 하코다테발 페리노선은 아오모리와 오마자키 등 두 개. 오마자키 노선을 택해 최북단을 둘러본 뒤 버스로 JR오미나토 역으로 가서 아오모리로 돌아온다.
JR오미나토센: 두 칸짜리 꼬마열차가 단선철도로 노헤지 역을 오간다. 소요시간은 편도 50분. 철도는 시모키타 반도의 서쪽, 그러니까 무쓰 만의 바닷가에 놓여있다. 하지만 바다가 조망되는 구간은 아주 잠깐 뿐이고 대부분 숲을 끼고 달린다. 숲은 해풍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림이다. 그래도 실망하진 마시라. 아오모리의 상징인 눈이 더 멋진 풍광을 선사하니. 열차 승객은 통학생과 출퇴근자 등 주민이 대부분이다. 편도 1040엔.
▼Travel Info▼ 교통: ◇항공: 인천∼아오모리는 대한항공이 매일 운항. 2시간 40분 소요 ◇아오모리∼하코다테 신칸센: 올 3월 26일 개통. 신아오모리∼신하코다테 호쿠토 역(148.9km)은 1시간 1분 소요. 도쿄에서 하코다테까지는 4시간 2분 소요 ◇렌터카: 아오모리 현의 도요타 차량은 올해부터 한국어 안내 내비게이션을 장착했다.
여행정보: ◇아오모리 현: www.kr-aomori.com ◇시모키타 반도: 바다조망 온천에 요코하마의 유채꽃밭, 최북단 오마자키 등 들를 곳이 많다. www.shimokita-kanko.com ▽가마후세마야 스키장: 무쓰 시 소재. 무쓰 만의 바다를 보며 다운힐 한다. 오미나토 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무쓰 시내 아리타의 프로테산 와규 스테이크. 맛집: ◇후루카와시장: 화요일 쉼. 개장 오전 7시∼오후 4시 ◇콘미도: 토·일요일 쉬며 예약 손님만 받는다. 영업은 정오∼오후 2시 반, 오후 6시∼오후 9시 반 ◇료칸 사가(さが): ‘가자마우라 안코 런치세트’(5000엔·세금 별도) 제공 ◇호타테고야(帆立小屋): 아오모리 역 부근. 낚시는 3분에 500엔 ◇아리타(Arita): 프로테산 와규 세트 디너(고기 100g) 5000∼1만5000엔. 예약필수. 일·수요일 쉼 ◇에이 팩토리(A-Factory):JR히가시(東)철도회사 직영 식품관, 에이(A)는 아오모리 특산 ‘사과(Apple)’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과로 만든 다양한 식품을 맛보고 구매할 수 있다. 그중엔 ‘시더(Cidre)’도 있는데 시더는 포도 대신 사과로 만든 발포주(Sparkling)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에이 팩토리엔 시더 양조시설(1층)과 시음장(2층)이 있고, 알코올과 비알코올 등 다양한 사과술과 음료를 판다. 사과파이를 굽는 빵집도 있다. 사과식초, 사과버터, 사과간장도 인기. 소비세 면세점. www.kr-aomori.com 일본술:아오모리 현에서 이름난 술 브랜드는 ‘덴슈(田酒)’. 그중에서도 ‘준마이슈(純米酒)’를 권한다. 니시타주조(창업 1878년)가 1970년 일본 사케의 원점으로 돌아가 품격 있는 술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전통방식의 수작업으로 빚어낸 술이다. 무쓰 만의 아부라카와 시 소재. www.denshu.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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