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시된 콘서트 영상물 ‘Roger Waters: The Wall’의 한 장면. 해리슨앤컴퍼니 제공
록 역사상 가장 완벽한 ‘1번 곡’은 뭘까.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1979년)을 여는 ‘In the Flesh?’는 챔피언의 요소를 다 갖췄다. 앨범의 피날레를 잇는 뫼비우스 구조로 시작해, 드럼-베이스-기타-오르간이 폭발해 단조의 불길함을 조성하고, 이것이 문득 A장조로 해결되며 묵직하고 장엄한 ‘라-도#-시-라-솔#-파#…’의 전기기타 반복구가 태어나는 과정은 그대로 청각적 명장면이다.
이 드넓은 음표의 벌판을 폭격기의 굉음이 가르고, 주인공 핑크가 ‘조명!’ ‘음향 효과!’ ‘액션!’을 광인처럼 외치는 이 3분 16초의 아우성은 81분짜리 음악 서사의 더할 나위 없는 서곡이다. 음악적 복선까지 여럿 축약돼 있다. 이를테면 폭발 전 긴장감을 조성하는 ‘레-미-파-미-레’는 뒤에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주선율로 쓰인다.
최근 블루레이로 출시된 콘서트 영상 ‘Roger Waters: The Wall’은 이 첫 장면을 유감없이 표현해냈다. 영상의 뼈대는 ‘The Wall’ 제작을 총지휘했던 핑크 플로이드의 전 멤버 로저 워터스(72)가 2010∼2013년 세계 곳곳에서 연 ‘The Wall’ 전곡 콘서트. 그가 전사한 조부와 부친의 묘소를 찾는 다큐멘터리를 공연 실황과 유기적으로 교차 편집해 그간 나왔던 비슷한 콘서트 실황과 차별화했다.
‘In the Flesh?’는 압도적이다. 연로한 워터스가 묘역에서 트럼펫을 꺼내 불자 하늘에 거대한 폭격기가 나타나며 무대로 장면 전환되는 편집이 환상적이다. 일그러진 선생과 돼지 형상의 대형 풍선이 객석 위를 날고, 워터스는 전성기 같은 노래와 연주로 핑크를 연기한다.
콘서트 무대 위에 쌓인 수많은 벽돌은 초고화질 화면. 음악과 실시간 반응해 환각적인 영상 쇼를 벌인다.
‘The Wall’의 21세기 버전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답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iKill’ ‘iPay’ 같은 표어도 ‘The Wall’의 사회 비판 메시지를 현재화한다.
특별 한정판 블루레이(3만9600원)에는 부가 영상을 담은 보너스 디스크, 공연 포스터, 32쪽 분량의 화보와 해설서가 포함됐다. 폭격기와 헬기 음향을 3차원으로 재현해줄 돌비 애트모스 스피커 시스템에 최대한 큰 화면까지 갖춰서 본다면 소름을 배가할 수 있다. 음악 CD로도 나왔다. 라디오헤드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나이절 고드리치가 음반 제작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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