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다 아는 그런 데 말고, 좀 더 특별한 그곳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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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재발견/앨러스테어 보네트 지음/박중서 옮김/
412쪽·1만5000원/책읽는수요일

남위 19도, 동경 159도.

호주와 프랑스령 누벨칼레도니(영어명 뉴칼레도니아) 사이에 있는 ‘샌디’ 섬의 위치다. 1876년 한 포경선이 길이 25km, 폭 5km의 타원형 모래섬을 이곳에서 발견했다고 밝힌 뒤 대부분의 세계지도에 기록됐다. 위성사진을 활용한 ‘구글 어스’를 통해서도 샌디 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섬은 2012년 사라졌다. 폭발하거나 가라앉은 것이 아니다. 호주 과학자의 현지 답사 결과 지도에만 표시돼 있을 뿐 실체가 없는 ‘유령 섬’으로 판정됐다. 한번 잘못 알려진 후 검증 없이 지도에 반복되어 기록돼온 것. ‘구글 어스’ 역시 위성사진뿐 아니라 기존의 여러 지도를 합성해 지리 정보를 표기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 책은 세계 47곳의 이색적 장소를 소개한다. 영국 뉴캐슬대 사회지리학 교수인 저자는 이름 모를 골목, 사라진 섬들, 도시 속 숨겨진 장소, 국경 사이 주인 없는 땅 등 무심코 지나친 장소의 의미를 되묻는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장소를 탐험한다.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시의 폐쇄된 지하도는 ‘미궁’으로 불린다. 숨겨진 장소를 모험하는 ‘액션 스쿼드’란 조직은 이 지하도의 입구를 찾기 위해 수많은 맨홀을 탐험했고, 붕괴 위험이 높은 지하도를 다니면서 인공동굴, 지하실을 발견했다. 이런 모험은 ‘장소에 대한 사랑’인 ‘토포필리아’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장소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들이 사는 장소를 지도에서 빼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모스크바에서 3500km 떨어진 ‘젤레즈노고르스크’는 1950년 핵무기 제조를 위해 건설된 도시다. 이곳은 비밀 유지를 위해 옛 소련 지도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상당수 지도에 누락됐다. 소수의 뛰어난 과학자와 기술자만이 살아온 탓에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도시가 된 젤레즈노고르스크의 주민들은 예전처럼 공개되지 않은 채 살고 싶다고 러시아 정부에 요구한 것.

에로티시즘이 장소에 투영되기도 한다. 영국 서리 주 퍼트넘 마을에는 ‘호그스 백 레이바이’란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은 ‘개 산책(Go Dogging)’으로 유명하다. ‘애견을 산책시킨다’는 핑계로 숲 속에 들어가 남녀가 성행위를 한다는 용어다. 이끼 등으로 촉촉한 이 땅이 육체적 쾌락에 대한 규제와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심리를 증폭시킨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 속에 소개된 ‘지도 바깥에 있는(off the map)’ 장소가 매일 비슷한 곳만 다니며 굳어져가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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