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 ‘빅 매치’ 조훈현-조치훈 12년 만에 대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6일 2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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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국자의 머리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있었다. 조훈현 9단(62)은 검은 숱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백발이었고, 마구 헝클어진 머리에 콧수염과 턱수염마저 깎지 않은 조치훈 9단(59)은 마치 도인 같은 느낌이었다.

하얀색의 개량 모시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든 조훈현 9단과 짙은 회색 양복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가끔 머리를 스스로 쥐어박는 조치훈 9단은 흑백의 대결처럼 묘한 대조를 보였다.
26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한국 현대 바둑 70주년 기념 행사로 성사된 ‘조훈현-조치훈 특별대국 전설의 귀환’은 오랜만에 화제를 모은 바둑계 ‘빅 매치’였다. 두 사람이 반상 앞에 마주 앉은 것은 2003년 삼성화재배 8강전 이후 12년 만이다.

한국 현대바둑은 고 조남철 9단이 1945년 11월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세운 것을 기점으로 삼는다. 한국기원 1층 바둑TV스튜디오에서에서 열린 이날 대국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이벤트를 통해 뽑힌 100명의 바둑팬과 이세돌, 김지석 9단 등 후배 프로 기사, 그리고 바둑 관계자들은 2층 공개해설장에 모여 대국을 지켜봤다. 공개 해설은 유창혁, 최명훈 9단이 맡았다.

조치훈 9단의 흑번으로 시작된 이날 대결(제한시간 1시간, 초읽기 40초 3회)은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두 기사의 기세가 충돌하며 시종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초반부터 대마를 공격하는 조치훈 9단의 예봉을 조훈현 9단이 잘 막아내 우세를 확보했다. 조치훈 9단이 중반전 무렵 재차 백 대마를 잡으러 가며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 것이 하이라이트. 이후 쌍방의 대마가 얽힌 백병전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전투의 신’인 조훈현 9단과 ‘타개의 신’인 조치훈 9단의 대결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조치훈 9단이 마지막 초읽기에서 초를 다 부르고 나서 뒤늦게 착수하는 바람에 154수 만에 시간패를 한 것. 평소 제한시간을 일찌감치 쓰고 100수 이상을 마지막 초읽기에 몰려서도 거뜬히 뒀던 조치훈 9단으로선 의외의 실수였다. 해설을 하던 유창혁 9단에 따르면 “끝날 당시 형세는 흑(조치훈)이 약간 우세하지만 승부를 점치기는 이른 상태”였다.

“상대가 바둑은 이기고 승부는 져준 거죠.”(조훈현 9단)

“패자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대선배를 만나 멋있게 두려다가 그만….”(조치훈 9단)

바둑이 끝난 뒤 공개해설장으로 올라와 팬들에게 인사 한 두 대국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복기를 하며 대국 소감을 밝혔다.

조치훈 9단은 복기 과정에서 유창혁 9단이 초반 어깨 짚은 수(흑 31)에 대해 실착이라고 지적하자 “유 9단 말이 맞다. 실전처럼 두는 게 멋있어 보여서…, 조훈현 선배가 워낙 잘 두니까 ‘저도 세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뒀다”고 응수해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 다른 실수에 대해서도 “계속 멋있게 뒀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그러지 못했다”며 조크를 던졌다.

이어 두 대국자는 최근 근황과 상대방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조훈현 9단은 “실력으론 젊은 기사들에게 밀리고 있지만 ‘내가 세계 1인자’라는 정신적 각오를 통해 승부사로서의 혼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치훈 9단은 “기재는 조훈현 9단이 100배 낫다. 나는 그걸 극복하기 위해 100배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젊을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 공부 마치고 바둑통을 닫는 순간 잊어버린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두 대국자의 골프 얘기도 공개해설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조치훈 9단은 “제가 조훈현 9단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게 골프인데 조훈현 9단이 부인과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 ‘대국 전에 조훈현 9단과 골프를 쳐 기를 꺾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농담을 하자 조훈현 9단은 “조치훈 9단은 일본에서 싱글을 치고 나는 흔히 말하는 ‘백돌이’다. 그래서 오늘도 백돌을 잡았다”고 맞받아 쳤다. 실제 조치훈 9단은 싱글 플레이어이고, 조훈현 9단은 보기 플레이어.

두 대국자는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뒤 팬들에게 부채에 일일이 이름을 써주는 사인회를 열어 팬서비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번 대국은 35년 전 기념 대국의 재연이다. 1980년 당시 명인전 획득으로 일본 바둑계를 제패한 조치훈 9단은 잠시 귀국해 바둑계 인사 최초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어 당시 한국 기전을 모두 휩쓴 전관왕 조훈현 9단과 2번의 기념 대국을 펼쳤다. 욱일승천하던 20대의 한일 바둑 영웅이 펼치는 승부에 바둑팬은 물론 전 국민이 관심을 가졌다. 당시 조치훈 9단이 두 판을 모두 이겼다.

이후 1980년대 말 세계대회가 개최되면서 두 대국자는 자주 만났다. 조훈현 9단은 조치훈 9단에게 내리 8판을 이겼고, 2003년 마지막 대국에서는 조치훈 9단이 이겨 체면치레를 했다. 이날 승리로 조훈현 9단은 비공식 대국을 포함해 상대전적에서 9승 5패를 기록했다.

조훈현 9단은 9살 때 세계 최연소로 입단해 1963년 일본에 유학을 가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 활약했으나 병역 문제로 1972년 귀국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중반에 국내 기전을 전부 석권하는 전대미문의 전관왕(80년 9관왕, 82년 10관왕, 86년 11관왕)을 3차례 기록했다. 1989년에 열린 제1회 응창기배에서는 한국기사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아 우승을 일궈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지금까지 통산 160회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조치훈 9단은 6살 때인 1962년 일본에 건너가 기타니 도장에서 수학했다. “명인을 따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1980년 명인전을 거머쥐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1983년엔 명인을 비롯해 기성 본인방 등 메이저 타이틀 3개를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을 이뤄냈다. 198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주요 타이틀을 거의 잃고 슬럼프에 빠졌으나 이후 90년대 초중반 대삼관을 무려 4년간 지속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일본 기계에서 가장 많은 타이틀(74회) 보유 기록을 갖고 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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