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의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을 잘해서가 아니라 못해서다. ‘웰빙’ ‘힐링’ 등 언뜻 따뜻하게 들려왔던 말들도 따지고 보면 실상은 반대였기에 역설적으로 열풍이 불었다. 그렇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서야 사람들은 “아, 시원∼하다!”라고 한다.
윌리엄 데이비스의 ‘행복산업’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행복과학’ ‘긍정심리학’ 등 행복을 수치화하고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활기차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소위 ‘행복산업’도 2000년대부터 종교와 같은 열풍이 불었다.
저자는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벤섬)에게서 인간의 감정을 수치화하는 감정과학의 기원을 찾는다. 약 250년 전 벤담은 맥박이나 화폐가 인간의 감정 강도를 수치화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몸의 어떤 징후를 통해 감정을 측정할 수 있거나, 동일한 화폐가치를 가지는 다른 두 상품이 구매자에게 같은 감정 효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벤담의 ‘척도 아이디어’는 이후 설문지를 통해, 미묘한 표정 측정을 통해, 맥박 측정 등을 통해 우리의 주관적인 감정을 수치화해 주는 과학으로 진화했다.
이런 감정척도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No”다. 오히려 ‘너무 차가운 도구와 척도를 사용’해서 감정을 측정하는 연구들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감정척도화’가 인간이 불행한 이유를 사회문제보다 개인문제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긍정에너지만 회복시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행복과학, 행복심리학의 논리다. 근본적으로 왜 행복하지 않은지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 날을 감추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가진 감정을 변화시키려 안으로 향하던 비판의 날을 다시 밖으로 돌려야 할 때라고. 왜 행복이 화두가 되는지, 이제는 정치적·경제적 문제에 비판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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