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맞으며/이창]문화재 구출작전이 통일에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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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창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국립박물관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는 그 어떤 나라와 견주어도 탁월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그러나 6·25전쟁 때 박물관에서 ‘문화재 구출작전’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박물관이 품고 있는 소중한 보물을 모두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초대 국립박물관장이자 나의 외할아버지 여당(黎堂) 김재원 박사(1909∼1990)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서울을 빼앗겼다. 그러나 7월 미군과 유엔군이 개입하면서 전세가 불리해지기 시작하자 북한군은 박물관 소장품들을 북으로 옮기려고 모든 유물을 포장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박물관 직원들이 꾀를 내 고의로 작업을 지연시켰다. 고려자기를 포장했다가 크기를 제대로 재지 않았다며 풀었다 쌌다를 반복하는 등 온갖 핑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기지를 발휘해 9월 28일 서울 수복까지 유물들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문화재가 안전해진 것도 잠시였다. 같은 해 11월 김 관장은 당시 친하게 지내던 미국공보원장 유진 크네즈 대위로부터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오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위기를 직감한 김 관장은 크네즈 대위에게 박물관 소장품을 남쪽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크네즈 대위는 수소문 끝에 서울에 도착한 군용열차들이 빈 채로 부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외교관 신분을 이용해 열차를 징발하였고 문화재를 부산까지 안전하게 피란시킬 수 있었다.

박물관의 유물은 단순히 국보가 아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말해주는 그림이고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거울이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수정구슬이다. 더욱이 국가의 정통성이 역사에서 나올진대, 그 역사의 증거물인 선조들의 유산은 그 정통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박물관과 문화유산 없이는 국가의 위상이 바로 설 수 없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힘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군은 후퇴하면서까지 박물관의 유물을 가져가려 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외국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인데 왜 유물이 북한으로 가는 것에 그렇게 부정적이었느냐고 말이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해진다. 하지만 통일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한 민족이 타의로 갈라져 너무 오랫동안 살았다. 통일이 되면 대박이 난다고 한다. 대박도 좋지만 통일 한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먼저 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무엇인지, 앞으로도 꼭 지켜나가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역사를 통해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통일된 대한민국이 정신적으로도 확고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통일을 숙고하는 요즈음, 나의 외할아버지 김재원 박사를 추억해본다.

이창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국보#북한#문화재 구출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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