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안보이는 아프리카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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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현대미술전 ‘…나우’ 국내 첫 개최
美-유럽작가 20여명 100여점 출품… 사자-얼룩말 대신 추상-풍자 가득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Earth(지구)’. 인종 국적 성별이 모호해 환경 문제를 비롯한 지구적인 위기 극복이 전 인류의 과제임을 암시한다. 오른쪽 사진은 조디 비버의 사진 작품. 그는 이번 전시에 남아공의 흑인 남자 셋, 백인 남자 셋을 팬티만 입혀 찍은 사진 6점을 내놓았다. 작가는 2010년 8월 타임지 커버에 게재된 코가 잘려나간 아프가니스탄 여성 사진으로 유명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Earth(지구)’. 인종 국적 성별이 모호해 환경 문제를 비롯한 지구적인 위기 극복이 전 인류의 과제임을 암시한다. 오른쪽 사진은 조디 비버의 사진 작품. 그는 이번 전시에 남아공의 흑인 남자 셋, 백인 남자 셋을 팬티만 입혀 찍은 사진 6점을 내놓았다. 작가는 2010년 8월 타임지 커버에 게재된 코가 잘려나간 아프가니스탄 여성 사진으로 유명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전시 주제를 모르고 봤다면 ‘아프리카’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전시장을 둘러봐도 서구 예술사조 야수파에 영감을 준 아프리카 가면이나 토속적인 공예품 같은 건 없다. 사자와 얼룩말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 풍경도 없다. 그럼에도 전시 제목이 ‘아프리카 나우’, 지금의 아프리카이다.

내년 2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나우’전은 국내 최초의 아프리카 현대미술 전시다. 아프리카라는 제목의 알리바이는 참여 작가 20여 명이 본인, 혹은 조상이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사실에 있다. 존 아캄프라, 케힌데 와일리, 티에스터 게이츠를 비롯해 참여 작가 대부분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같은 주류 미술계에서 전시하며 주목받는 작가다.

그래서 전시 작품 100여 점은 ‘때’묻지 않은 원시성이나 소수자의 억눌린 한보다는, 멀쩡한 그림에 코끼리 똥칠을 하는 실험정신(크리스 오필리)과 인종 문제마저 한발 떨어져 보는 여유를 담고 있다.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건 퍼포먼스 작가 닉 케이브의 비디오 작품이다. 알록달록한 털옷을 뒤집어쓰고 한바탕 탈놀이를 펼치는 영상이다. 한 겹 외피만 둘러도 인종 성별 계층 따위는 가려지지 않느냐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한다. 사진작가 논시케렐로 벨레코가 남아프리카공화국 거리의 패셔니스타를 찍은 사진들은 무거운 과거에서 자유로운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의 두툼한 입술과 커다란 눈이 익살스러운 설치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모국의 내전 후 남겨진 AK47 소총, 로켓포, 권총들의 잔해를 재료로 썼다. 총과 총탄으로 장식한 왕좌는 모잠비크만의 이야기일까.

직설적인 풍자만화가 안톤 카네마이어조차 ‘남아공은 무지개 나라’라는 주장에 ‘무지개엔 검은색이 없네’라는 대꾸를 집어넣는 유머를 잊지 않는다. 흑인과 백인 남자들을 팬티만 입혀 찍은 사진작가 조디 비버는 벗은 여자들 그림만 지겹도록 그려온 서구 미술계를 시원하게 한 방 먹인다.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설치작 ‘Earth(지구)’에 이르면 전시장에서 왜 아프리카를 느낄 수 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주먹을 쥐고 한 발을 내디딘 마네킹은 남자인데 치마까지 입었다. 머리 대신 지구의를 달아 놓아 인종도, 국적도 알 수 없다. 마네킹의 옷은 인도네시아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네덜란드에서 대량생산해 서아프리카 식민지에 판매한 천으로 만든 것이다.

글로벌한 현대미술에선 서구적인 것도 아프리카적인 것도 없다. 잔인한 노예제도에 따른 흑인 디아스포라(이산)는 서구 근대국가를 살찌웠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의 DNA에도 녹아들었다. 그래서 전시는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냐고.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아프리카 나우전#조디 비버#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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