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금융과 물리학의 ‘상열지사’

최한나기자 입력 2014-08-30 03:00수정 2014-08-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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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물리학/제임스 오언 웨더롤 지음/이충호 옮김/407쪽·1만8000원·비즈니스맵
예측불허 주식시장에 과학 접목… 월街 인물들 이야기도 재미 쏠쏠
주식이나 옵션을 거래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파생상품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블랙-숄스 모형’을 스치듯 한 번쯤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모형이 현대 금융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알 것이다. 1973년 이 모형을 처음 고안한 피셔 블랙은 응용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사실 과학도에 가까웠다. 그는 화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물리학에 정착했다.

블랙-숄스 모형 덕분에 전 세계 주식시장은 차원을 달리하는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물리학이 증권가에 스며든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다.

때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북서부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루이 바슐리에는 프랑스의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그랑제콜 진학에 실패한 후, 파리대학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앵카레 교수를 만났다.

푸앙카레의 지도를 받으며 바슐리에가 쓴 논문 주제가 바로 블랙-숄스 모형의 기초가 되는 ‘브라운 운동’이다.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와 같다는 뜻에서 ‘무작위 행보(random walk)’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역학이다. 술에 잔뜩 취한 남자가 호텔에 도착했다고 가정해 보자. 간신히 몸을 가누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길게 뻗은 복도 끝에 섰다. 한쪽 복도 끝에는 700호실이, 반대편 복도 끝에는 799호실이 있다. 비틀거리면서 갈지(之)자로 걷기 시작한 이 남자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700호실에 가까워질 확률이 50%, 799호실에 가까워질 확률이 50%라면 100걸음, 혹은 1000걸음 후 그가 특정 방 앞에 서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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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이 주식시장을 이해하는 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술 취한 남자가 바로 주식이다. 앞의 질문은 ‘만약 어느 가격에서 출발한 주가가 100번 혹은 1000번의 무작위 행보를 한 뒤 도달하는 지점은 어디일까’로 다시 쓸 수 있다. 물리학을 공부하며 사물의 움직임과 변동성의 원리를 익힌 바슐리에는 주가가 무작위 행보를 할 때 일정 시간 후 특정 가격에 이를 확률이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달이 차면 기운다는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이는 주가의 무작위 행보는 이렇듯 100여 년 전 한 물리학자에 의해 생명을 얻었다.

그 다음 발전사도 물리학자가 이어 썼다. 1916년 미국에서 태어난 모리 오즈번은 천체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어느 날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수천 개에 달하는 주식시장 데이터가 나열된 지면을 보다가 이 숫자들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점을 간파했다. 하지만 정규분포를 이루는 것은 주가가 아니라 주가 간 차이를 비율로 나타낸 수익률이라는 점을 발견해 한 걸음 진보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덕분에 주식시장은 또 한 번 진화했다.

책은 수학과 물리학, 경제학과 금융공학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이 저자가 아니라면 누가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하버드대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7년 만에 물리학, 수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대에 교수가 됐다. 물리학이 금융과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주요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주식과 금융 시장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더 수월하게 읽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돈의 물리학#금융#경제#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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