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배우로 38년만의 만남… 연애할때처럼 떨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1950년 동갑내기 한태숙-김성녀… 8월 6일 ‘유리동물원’서 첫 호흡

《 “저, ‘갑장’입니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자 배우인 김성녀(64)가 동갑내기 연출가 한태숙(64)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2012년 창극 ‘장화홍련’을 연출해 달라고 부탁할 때였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연극계에서 활동해 서로를 잘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동갑이지만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했다.
2년 후 이들은 다시 만났다.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8월 6일 막이 오르는 연극 ‘유리동물원’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것.
1930년대 경제공황 당시 미국을 배경으로 과거의 향수에 집착하는 어머니 아만다(김성녀), 장애가 있는 누나 로라(정운선),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톰(이승주)이 현실 탈출을 꿈꾸는 내용을 그린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25일 서울 대학로 연습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연습실 한쪽에는 김성녀가 직접 담근 매실차가 놓여 있었다. 》      
        

김성녀(오른쪽)는 요즘 우엉차, 매실차를 준비해 연출가 한태숙의 건강을 직접 챙긴다. 2년 전 창극 ‘장화홍련’을 연출할 때 한태숙은 집으로 김성녀를 초대해 생선구이를 곁들인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성녀(오른쪽)는 요즘 우엉차, 매실차를 준비해 연출가 한태숙의 건강을 직접 챙긴다. 2년 전 창극 ‘장화홍련’을 연출할 때 한태숙은 집으로 김성녀를 초대해 생선구이를 곁들인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성녀=38년 전쯤 한 선생님이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 주인공을 제안하셨는데 당시 임신 중이어서 못했어요. 그 뒤로 언제 불러주실까 고대했죠.

▽한태숙=더 늙기 전에 작품을 꼭 같이하고 싶었어요. 출중한 배우니까요. ‘유리동물원’을 하게 되자마자 김 선생님을 아만다로 떠올렸어요. 첫 장 지문에 아만다가 작은 체구라고 묘사돼 있지만 로라가 덩치 큰 아만다 옆에 있을 때 작은 느낌이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이런 좋은 역이 또 올까 싶어요. 올해 10주년을 맞은 ‘벽 속의 요정’ 중국 공연 일정도 늦췄다니까요.

▽한=작품 중 사람을 죽이거나 복수하는 게 없는데도 비극적이에요. 우울한 가족 관계, 현실 탈출을 갈망하는 모습이 지금의 현실과 그대로 맞닿아 있죠. 테네시 윌리엄스는 꼼짝달싹 못하게 치밀하게 썼어요. 지독해요. 미려한 진통을 사실적으로 관객에게 전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김=한 선생님은 ‘진돗개’ 같아서 한 번 잡으면 놓지 않죠. 10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서 매의 눈초리로 보세요. ‘두 발자국 걸은 뒤 멈추고’, 이런 식으로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요. 배우가 찾아내게 만들죠.

▽한=김 선생님은 이미 자기 세계를 구축한 배우인데도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어요. 저는 죽었다 깨도 못할 일인데요.(웃음)

▽김=나이 들어 동갑 친구를 만나니 더 좋네요. 연애 시작할 때처럼 떨리기도 하고요. 늘그막에 결혼한 부부가 잘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웃음) 한 선생님은 단어 하나를 어떻게 표현할까를 두고도 며칠을 논쟁하세요. 아만다가 오전 6시면 톰을 깨워요. 그때 하는 말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슬로건인) ‘일어나 비추어라’예요. 20일에 걸쳐 다른 표현으로 바꿨다가 결국 다시 넣었어요. 질릴 정도예요.(웃음)

그때 옆 연습실에서 ‘악! 악!’ 하는 날카로운 여성의 비명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김=짐(심완준)과 로라가 키스신 연습하는 거예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연습하는 장면이에요. 춤추고 들어올리고 하느라 두 배우 무릎이 다 까졌다니까요.

▽한=연습할 때 너무 과열되면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단테의 신곡’을 끝으로 올해 일정이 마무리되면 수도원 많고 공연도 볼 수 있는 데로 여행가고 싶어요.

▽김=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연극이라는 힘들고 고독한 길을 같이 갈 동지를 만났잖아요. 좋은 작품을 함께하며 남은 생을 불태워 보고 싶어요.(웃음)

8월 6∼30일. 2만∼5만 원. 1644-2003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태숙#김성녀#유리동물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