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신을 지배할 힘을 남에게 넘겨주는 건 邪惡”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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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토니 모리슨 지음·송은주 옮김/244쪽·1만3000원·문학동네

인종주의라는 비극의 기원을 소설로 그려낸 작가 토니 모리슨. 동아일보DB
인종주의라는 비극의 기원을 소설로 그려낸 작가 토니 모리슨. 동아일보DB

작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빌러비드’(1987년)가 미국 남북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노예제의 처참함을 고발했다면, 2008년 작품 ‘자비’는 17세기 말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의 인물을 통해 미국에서 어떻게 인종주의와 노예제도가 뿌리내렸는지를 엿본다. 소설의 중심에는 고아 출신으로 신대륙에 건너와 자수성가한 제이컵 바크의 농장이 있다. 영국에서 건너온 그의 아내 레베카, 여자 하인인 인디언 리나, 흑인 플로렌스, 혼혈 소로, 백인 남자 하인 스컬리와 윌러드까지 농장의 구성원은 새롭게 건설되는 신대륙을 상징하는 공동체다. 아무도 잔인하게 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던 농장의 평화는 제이컵이 병사하면서 깨지고 만다.

레베카조차 남편 없이는 사실상 법 바깥에 놓인 존재였으니, 여자 하인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예속돼야 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 가운데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주인의 빚 대신 제이컵에게 넘겨진 플로렌스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어머니에게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플로렌스는 자유를 누리는 흑인 대장장이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플로렌스는 그에게 노예처럼 종속되기를 바라지만 사랑을 잃고 비로소 자유를 깨닫는다.

마지막 장은 플로렌스의 어머니가 전하는, 딸에게 전해지지 않을 고백이다. 어머니는 성적 학대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마음속에 짐승이 없는’ 제이컵에게 딸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어머니는 말한다. “다른 이를 지배할 힘을 넘겨받는 것은 힘든 일이지. 다른 이를 지배할 힘을 빼앗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자신을 지배할 힘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것은 사악한 일이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토니 모리슨#빌러비드#자비#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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