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별별 예쁜 책]왼쪽엔 펜화, 오른쪽엔 메모… 어디부터 펴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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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문훈 글·그림/256쪽·2만8000원·스윙밴드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즐거움을 덧붙인 그림책이다. 독자가 ‘제멋대로’ 뒤적이며 즐거운 공상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스윙밴드 제공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즐거움을 덧붙인 그림책이다. 독자가 ‘제멋대로’ 뒤적이며 즐거운 공상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스윙밴드 제공
다홍색 하드커버를 옆으로 펼치고 나서는 책을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려야 한다. 실로 묶어 깔끔하게 제본한 종이 두 뭉치가 눈앞에 나란히 놓인다. 쌍여닫이문을 열어젖히듯 마분지 속표지를 양쪽으로 넘긴다.

왼쪽 묶음에서 하나하나 드러나는 건 인체 해부도 뺨치도록 세밀하게 그려낸 기기묘묘한 펜화 120점이다. 오른쪽 묶음에는 책을 위해 추려낸 그림을 보면서 저자가 새로 쓴 메모를 한국어와 영어로 인쇄했다.

양쪽 페이지를 계속 동시에 넘기면서 읽어나갈지, 그림만 죽 보다가 궁금한 글을 뒤적여 읽을지, 글부터 훑다가 눈길 잡는 구절에 멈춰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와 작가의 그림을 비교해 볼지, 독자의 자유다.

저자인 건축가 문훈(46)은 6월 7일∼11월 23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건축비엔날레 한국관에서 펜화 40점을 선보인다. 이 책엔 거기서 전시할 그림 25점이 포함됐다. 몇 쪽만 살피면 곧 ‘범상한 공간을 추구하는 건축가가 아니겠구나’ 짐작이 든다. 2009년 작인 강원 정선군의 펜션 ‘락있수다’는 커다란 황소 뿔을 달아 흥미로운 논쟁을 일으켰다. 2005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서울 마포구 ‘상상사진관’은 홍익대 앞 공간의 경박한 흐름을 한 박자 묶어 잡아주는 세련된 무게중심이다.

건물 그림은 3분의 2 정도다. 어느 별엔가 주차해놓은 듯한 우주선 단면도, 제주도 여행 플로차트, 행복했던 점심 한 상의 상세도…. 건축이 그저 ‘집 짓는 일’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빼곡한 삶의 기록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펜화#메모#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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