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별별 예쁜 책]삐딱이의 세상 낯설게 보기… 글보다 그림이 마음에 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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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지오그래피/윌 셀프 지음·박지훈 옮김/336쪽·3만 원·21세기북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풍자와 익살 넘치는 삽화에 있다. 사진은 모로코의 관광지 마라케시 주변 풍경을 그린 삽화. 낙타에 올라탄 모로코인이 “우리는 왜 아우디에서 만든 사막용 4륜 구동 자동차가 아닌 낙타만 맨날 타야 하는 거냐”며 투덜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1세기북스 제공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풍자와 익살 넘치는 삽화에 있다. 사진은 모로코의 관광지 마라케시 주변 풍경을 그린 삽화. 낙타에 올라탄 모로코인이 “우리는 왜 아우디에서 만든 사막용 4륜 구동 자동차가 아닌 낙타만 맨날 타야 하는 거냐”며 투덜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1세기북스 제공
삐딱한 경계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낯설게 보는 글도 매력적이지만, 익살과 위트 넘치는 삽화가 훨씬 매력적인 책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설가 겸 평론가,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고어텍스와 나일론 소재의 아웃도어 복장으로 무장하고 도보 여행을 떠난다. ‘괴짜 작가의 지구 산책’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영국은 물론 미국, 태국, 터키, 인도, 중국, 네덜란드, 브라질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건물과 풍경, 사람들의 모습에서 포착한 사유를 기록했다.

수록된 삽화만 잘 챙겨 봐도 이 책의 본전은 뽑겠다 싶을 정도로 때로는 유머스럽고 때로는 풍자가 묻어나는 그림이 독자의 시신경을 자극한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대서양 횡단 여객기를 몸통에 바퀴가 달린 뚱뚱한 새로 그리는 것은 애교 수준. 뉴욕 케네디국제공항의 출입국 관리사무소 풍경에선 아메리칸 드림의 문턱을 못 넘고 주저앉은 사람들의 피로감이, 빅토리아풍 건물로 가득한 영국 리버풀 거리는 제국의 영광을 뒤로 하고 쇠락하는 산업도시의 적막함이, 이스탄불에서 성 소피아 대성당을 배경으로 분주히 오가는 빨간 모자 차림의 홍차 행상의 모습에선 향긋한 차 내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책의 삽화를 맡은 작가는 랠프 스테드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출간 50주년 기념판 삽화를 그렸고, 영국의 유명 와인과 맥주 상표를 디자인한 일러스트레이터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가 창안했다는 심리지리학(사이코지오그래피)을 적용해 기억과 꿈, 연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자의 공간 분석도 신선하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사이코지오그래피#삽화#랠프 스테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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