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황천나무잎벌레 멍석딸기꽃… 멈추니 비로소 보였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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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박이자나방/문효치 지음/125쪽·9900원/서정시학

어느 스님이 쓴 베스트셀러 제목처럼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세상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의 속도에 맞춰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놓치고 지나가 버린 것들이다. 게다가 그것이 내 욕망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내 편도, 방해가 될 네 편도 못되는 한낱 미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계간 문예지 ‘미네르바’의 주간으로 우리 일상의 장소와 시간의 흐름을 배경으로 익숙한 사물과 자연물을 시의 단골 소재로 등장시켜 온 시인의 이 시집은 읽는 이에게 소재가 곧 주제라는 인상을 준다. 개똥벌레 부전나비 노린재처럼 미물이라며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는 각종 벌레, 잡초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쇠비름꽃 개구리밥 메꽃 같은 들풀이나 들꽃을 소재로 쓴 시 70여 편이 실렸다. 그야말로 미물과 잡초로 가득한 시집이다.

시인은 “우리 생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생태계의 실존적 구성원”들의 “저 반짝임, 저 울음, 저 사투리를 해독하고자 한다”고 썼다. 이 시집의 시어는 여태까지 우리에게 익명으로만 존재했던 생명체들의 이름을 낱낱이 호명하고 이들과 공명하려 몸부림친다. “벌레라니/미지의 별을 향해 발신(發信)하는/버튼인 것을”(‘황천나무잎벌레’ 중)

시인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짓밟히고 도구화된 세상 미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50쌍의 눈, 50쌍의 귀를 활짝 열어 둬야 보이고 들리는 아우성이다. “무심히 밟았다가/화들짝 놀랐다//거기 어기차게 흐르고 있는/정한 생명에/분노의 불길이 일고/이 불길에 온몸을 데었기 때문이다”(‘땅빈대’ 중)

알락귀뚜라미, 멍석딸기꽃, 며느리밑씻개, 미운사슴벌레, 별박이자나방…. 수록된 시를 읽어 나가다가 정말 이런 이름을 가진 생명이 있나 싶어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여러 번. 검색창에 그들의 이름을 쳐 넣자 그 이름에 걸맞은 꼴과 색을 가진 이미지가 내게 다가왔다. 잠시 멈출 수 있어 비로소 보였던 것들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별박이자나방#미네르바#시집#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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