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쥐어짠다는 소문 알고있지만 열정적 준비자세 와전된 것 아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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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한국어 라이선스 뮤지컬 ‘위키드’ 연출하는 리사 리구일로

뮤지컬 ‘위키드’가 4인 2조 더블 캐스트로 진행되는 것은 이번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처음이다. 리사 리구일로 연출은 “4명의 주연은 모두 동등하게 다른 ‘마녀’들이다. 연출이 할 일은 두 배가 됐지만 각각의 역량을 최대한 뽑아내는 도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뮤지컬 ‘위키드’가 4인 2조 더블 캐스트로 진행되는 것은 이번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처음이다. 리사 리구일로 연출은 “4명의 주연은 모두 동등하게 다른 ‘마녀’들이다. 연출이 할 일은 두 배가 됐지만 각각의 역량을 최대한 뽑아내는 도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4개월간 객석 점유율 96%, 티켓 판매 매출 약 260억 원.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지난해 첫 내한 공연 성적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의 2012년 총 매출은 약 2700억 원(인터파크 추산). 관객이 구매한 티켓 10장 중 1장이 ‘위키드’였던 셈이다.

스타 출연자의 이름값에 기대지 않은 호주 팀 공연이었음을 감안하면 온전히 작품의 힘으로 거둔 흔치 않은 성공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의 녹색피부 악당 서쪽마녀가 실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추레한 외모 때문에 억울하게 오해받은 아웃사이더였다는 설정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위키드’의 첫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 개막을 4주 앞둔 26일 오전 서울 남산창작센터. 3시간 남짓 주요장면을 점검한 뒤 1막 리허설을 진행하는 내내 315m² 넓이의 연습실 어느 한 구석도 흐트러지는 기미가 없었다. 천장 가득 무겁게 얹혀진 부담을 날려버리려는 각오의 열기가 시종 팽팽했다.

그 한가운데서 배우와 스태프 60여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고 있던 리사 리구일로 연출(51)을 만났다. 그는 조 만텔로 오리지널 연출의 후임으로 로스앤젤레스, 런던, 도쿄 공연을 이끌었다. 연두색 형광노트에 쉼 없이 지시사항을 기록하는 그의 곱슬머리 뒤로 서쪽마녀 엘파바의 얼굴이 겹쳤다.

―연습 과정이 혹독해 배우를 곧잘 울리는 것으로 악명 높다고 들었다.

“하하, 열정적으로 준비한다는 평판이 와전된 것 아닐까.”

―8주간 하루 12시간 연습, 출연배우 36명 전원 참석, 프롬프터를 쓸 수 없으므로 연습 전 대사 암기 필수. 당연한 듯하지만 지키기 힘든 원칙일 텐데….

“한국 배우들과 일해 보니 준비가 철저하고 수정 요구도 재빨리 이해해 반영한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 비해 개막 전에 일찌감치 빠른 페이스로 기량을 향상시키는 연습 스타일을 버거워하더라. 한국에서는 일단 연습을 시작한 뒤 여유를 갖고 디테일을 다듬어가는 듯하다. 크고 중요한 차이다. 힘들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대사를 완벽히 외울수록 공연의 완성도가 당연히 높아진다.”

―뭐든 만드는 이가 힘들고 괴로울수록 소비하는 이의 눈과 귀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100% 실현하기 힘든 이상이긴 하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한 배우는 없었나.

“누구나 공연을 앞두고 절망적 순간을 맞는다. 배우가 주저앉아 울면 그냥 한동안 내버려둔다. 딱 한마디만 건넨다. ‘좋아질 거다’라고. 배우들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자신에게 화를 내고 들볶는 배우가 몇몇 있었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항상 최소 3가지를 동시에 살펴야 한다. 순간순간이 머리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이다.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배우로 데뷔해 연출로 전향했다. 배우 시절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았나.

“물론 나도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이제 나이 들고 나니 그런 판단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진 거다.”

―엘파바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건 억울하게 오해받은 경험에 대한 공감 덕분 아닐까. 원작소설을 쓴 그레고리 매과이어도 어린시절 느낀 소외감을 모티브로 삼았다던데….

“학교 다닐 때 나 역시 누구에게나 환대받은 아이는 아니었다.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가 카리브 해 출신이라 생활방식이 뉴욕 스타일과 달랐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엘파바처럼 몰아세우면 맞서 싸울 태세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갈증도 ‘위키드’의 성공 요인인 듯한데….

“나는 오래된 레퍼토리를 거듭 관람하는 것도 좋아한다.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건 새로운 세대가 훌륭한 작가, 작곡가, 연출가, 배우로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비슷비슷한 작품이 거듭 공연되는 현상을 식상하게 여기는 관객 역시 변화를 이끄는 긍정적 요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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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현 박혜나 정선아 김보경 이지훈 조상웅 남경주 이상준 출연. 11월 22일∼2014년 1월 26일. 6만∼14만 원. 1577-336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위키드#리사 리구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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