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레에 꽂힌 16세 소년 “인도의 빌리 엘리엇 될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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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뉴델리서 한국-인도 수교 40주년 기념 갈라공연

발레리노를 꿈꾸는 인도의 ‘빌리’, 프린스 샤르마(가운데)에게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꿈을 보여줬다. 26일 인도 뉴델리 시리포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공연이 끝난 뒤 샤르마는 무대에서 김기완(오른쪽)에게 발레 동작을 배웠다. 국립발레단 제공
발레리노를 꿈꾸는 인도의 ‘빌리’, 프린스 샤르마(가운데)에게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꿈을 보여줬다. 26일 인도 뉴델리 시리포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공연이 끝난 뒤 샤르마는 무대에서 김기완(오른쪽)에게 발레 동작을 배웠다. 국립발레단 제공
빛나는 두 눈과 활짝 핀 미소는 어둠 속에서도 감춰지지 않았다. 몸은 점점 더 무대를 향했고 시시때때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의 국립발레단이 선보이는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몸짓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 인도 소년을 사람들은 ‘빌리’라고 불렀다.

프린스 샤르마(16)는 3개월 전부터 뉴델리 근교 신도시 구르가온에 있는 발레교습소 ‘센트럴 컨템포러리 발레(CCB)’에 다닌다. 영국의 척박한 탄광촌에서 발레리노를 꿈꿨던 영화 속 빌리 엘리엇처럼, 소년은 낡은 발레슈즈를 신고 매일 8시간씩 연습을 한다. 직업발레단이 없는 인도에서 CCB는 유일한 발레학원이다.

25일 한국문화원에서는 CCB 교습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발레교실이 열렸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지영 이영철, 그랑솔리스트 신승원 송정빈이 교사로 나섰다. 김지영의 지도에 따라 18명의 인도 학생이 탄듀, 아다지오, 피루엣, 샹주망 등 발레동작을 따라했다. “2000년 당시 내한한 유리 그리가로비치 선생님(러시아 안무가)을 바라보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보는 것 같아요.”(오자현 국립발레단 공연기획팀장)

발레교실을 지켜보던 한 남자의 눈이 붉어졌다. CCB를 설립한 산자이 카트리(30)였다. TV와 인터넷에서 세계적인 발레리노 훌리오 보카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알게 된 그는 인도에 있는 미국대사관 내 발레교실에서 처음 발레를 배웠다. 이후 북미나 유럽을 가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커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유니버설발레단(UBC) 동영상을 접한 뒤 e메일을 보낸 것을 계기로 2011년 처음 한국에 왔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발레리노 이원국에게서 틈틈이 발레를 배운 그는 2012년에는 UBC의 ‘호두까기 인형’,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내한공연 ‘지젤’에 단역 무용수로 참여하기도 했다.

김지영과 이영철은 샤르마의 동작에 감탄을 거듭했다. “우와, 정말 뛰어나네요. 다리와 발의 자세, 체격조건이 남달라요.” “고작 3개월을 배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카트리는 “샤르마가 한국에서 체계적으로 발레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은 “예전에 우리가 러시아와 프랑스의 발레를 배웠듯 이제는 발레 불모지에 한국의 발레를 전파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밝혔다.

26일 한국-인도 수교 40주년을 기념한 국립발레단 갈라 공연이 뉴델리 시리포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렸다. 단 한 번도 발레 공연을 실제로 보지 못한 샤르마가 손꼽아 기다리던 공연이었다. 당초 ‘왕자 호동’ 전막을 펼칠 계획이었으나 공연장에 무대 배경 막을 거는 설비가 없어 ‘돈키호테’ ‘라바야데르’ ‘지젤’ 하이라이트로 꾸민 갈라로 바뀌었다.

이날 초청된 뉴델리의 20개교 학생 2000여 명은 처음 접한 발레에 우렁찬 함성으로 환호했다. CCB의 나이가 적지 않은 발레 ‘꿈나무’들의 눈빛도 빛났다. 샤르마와 친구들은 객석 맨 앞줄에 앉아 무용수들의 몸짓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비샬 다히야(27), 발레 동작은 다 알고 싶다는 타프티 자인(23), ‘지젤’의 백색 군무에 푹 빠져버렸다는 푸르바 바트라(18)…. 특히 김기완 이영철 김윤식 등 남자 무용수들의 회전 동작과 점프, 여성 무용수를 들어올리는 리프트에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샤르마는 공연이 끝난 뒤 그 열기에 휩싸여 한참이나 박수를 쳤다. “인도에는 발레단이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할 거예요. 한국 발레단의 무대에서 내 꿈을 봤어요. 어디에서든 발레를 하고 싶어요.”

뉴델리=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국립발레단#인도#프린스 샤르마#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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