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효석 대학생때 쓴 미발굴 시 2편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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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방 염원-계급의식 드러내

1927년 이효석이 경성제대 재학 당시 잡지 ‘문우(文友)’ 제5호에 발표한 시 ‘님이여 들로!’와 ‘살인’의 원문 페이지를 그래픽으로 꾸몄다. 오른편에 있는 76쪽 하단에 작가의 이름이 한문(李孝石)으로 명기돼 있다. 소명출판 제공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작가 이효석(1907∼1942)의 전집에 실리지 않은 미발굴 시 2편이 새로 발견됐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성제대 예과 문우회(文友會)가 펴낸 잡지 ‘문우(文友)’ 제5호에 실린 ‘님이여 들로!’와 ‘살인(殺人)’이다.

기존의 이효석 전집에는 수록돼 있지 않은 시로 경성제대 영문학과 출신인 작가가 대학 시절 투고한 작품으로 보인다. 이 잡지는 재단법인 ‘아단문고’가 소장하고 있다.

‘님이여 들로!’는 시적 화자가 ‘님’에게 도회적인 삶을 청산하고 태양과 바람, 흙의 기운이 넘치는 들로 가자고 권하는 내용의 시다. 함께 수록된 ‘살인’은 단검으로 사람이 살해되거나 자살하는 찰나의 이미지를 포착한 시다.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 유랑민의 비참한 삶을 고발한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효석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1925년 예과 1학년 때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을 발표해 선외가작(選外佳作·입선은 안 됐지만 최종심에 오른 작품)에 오르는 등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효석의 시는 16편으로 이번에 발굴된 시를 합치면 18편으로 늘어난다.

시를 검토한 공강일 이효석문학재단 문학팀장은 “시가 발표된 1927년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시기”라며 “시 곳곳에서 카프 문학 경향의 영향을 받아 계급의식과 조국 해방에 대한 염원이 드러난다”고 평했다.

그는 “‘님이여 들로!’에 나오는 ‘건강한 태양’이나 ‘8월의 원야’는 독립을 쟁취한 조선 땅의 상징으로 읽혀지고 ‘붉은 피 뒤끓는 들로’ 가자는 시어에서는 계급적 진취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카프 진영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자주 사용한 피의 분출과 살해라는 모티브가 사용된 시 ‘살인’도 같은 맥락에서 계급의식의 쟁취를 주제로 쓴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시를 발굴한 서지학자 김종욱 씨도 “1933년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를 결성하기 전까지 이효석이 발표한 ‘기우’(1929년) ‘노령근해’ ‘북국사신’(이상 1930년) 같은 초기 소설에 드러난 계급의식이 엿보이는 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성제대 졸업 무렵의 이효석.
경성제대 졸업 무렵의 이효석.
학계에선 이효석이 등단 이후엔 정식으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효석 시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지 않고 있다. 윤대석 명지대 교수(국어교육)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로 보인다”면서도 “이효석의 시는 전반적으로 습작으로 보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이효석문학재단은 이번에 발굴한 시까지 포함한 이효석 문학전집 정본을 내년까지 만들어 전국 대학 및 도서관에 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이효석#문우#님이여 들로!#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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