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받던 옛 양념단지들, 모아놓고 보니 예술이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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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부엌-규방-사랑방 생활용품 소개하는 세 전시회

서울 사간동 두가헌(갤러리 현대 신관 옆)의 ‘옛 부엌의 아름다움’전에 나온 조선 후기의 석간주 항아리들. 양념단지, 장단지, 꿀단지 등으로 사용한 흑갈색 항아리들은 단순 투박하면서도 힘찬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서울 사간동 두가헌(갤러리 현대 신관 옆)의 ‘옛 부엌의 아름다움’전에 나온 조선 후기의 석간주 항아리들. 양념단지, 장단지, 꿀단지 등으로 사용한 흑갈색 항아리들은 단순 투박하면서도 힘찬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작은 항아리들이 나란히 키를 맞춰 줄줄이 도열해 있다. 옹기도 도자기도 아닌, 64점의 흑갈색 단지들은 반짝이는 표면에 각진 몸매를 갖고 있다. 무뚝뚝한 표정과 투박한 형태가 얼핏 비슷해 보여도 하나하나 옹골찬 존재감과 개성을 보여준다. 이들은 조선 후기 서민들이 꿀과 엿, 온갖 양념을 보관할 때 썼던 석간주 항아리다. 산화철 유약을 발라 구워낸 단지들은 진한 커피를 연상시키는 색상과 자연스러운 조형미가 매력적이다. 대청마루와 뒤주에 올려놓고 썼던 해묵은 생활용품을 이렇듯 모아 놓으니 거장의 설치작품 못지않은 아우라를 뿜어낸다. 》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는 27일까지 ‘옛 부엌의 아름다움: 백항아리와 석간주’전을 두가헌에서 마련했다. 홀대받던 부엌세간을 전시공간에 초대한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은 “100점을 채우려 했는데…. 거친 듯 소박한 석간주 항아리가 집집마다 있었는데 이젠 보기조차 힘들어졌다”고 아쉬워했다. 같은 기간 사랑방의 가구를 모은 ‘전통선비 목가구’전도 본관에서 열린다. 무료. 02-2287-3591

여인네들의 손때 묻은 가구와 용품을 선보이는 ‘규방문화와 목가구’전도 전통문화의 멋과 그 정신적 가치를 접하는 자리다. 11월 7일까지 서울 신세계갤러리(백화점 본점 12층)에서 열린 뒤 인천과 부산점으로 이어진다. 무료. 02-310-1921

○ 기품 있는 규방, 정겨운 부엌

‘규방문화와 목가구’전에 선보인 빗접과 장신구함. 신세계갤러리 제공
‘규방문화와 목가구’전에 선보인 빗접과 장신구함. 신세계갤러리 제공
규방은 부녀자들의 생활공간이자 서예 바느질 등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문화와 예술이 호흡하는 공간이다. ‘규방문화와 목가구’전은 조선시대 기품 있는 여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목가구와 공예품 160여 점을 한데 모았다. 머릿장 문갑에 좌경(座鏡)과 빗, 반짇고리와 실패, 베개 등 옛 여인의 안목과 미감이 스며든 용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단아하면서 실용적인 장과 농도 있고, 세련되고 화사한 장신구도 보인다.

‘옛 부엌의 아름다움’전에 나온 자그마한 뒤주와 청화백자 등도 독특한 개성과 세련미를 자랑한다. 물건을 쓰는 사람과 이를 만든 장인 사이의 교감은 현대의 획일화된 생활소품이 따라갈 수 없는 격조를 만들어냈다. 양반이 썼든 서민이 썼든 두 전시에 소개된 생활용품은 절제된 아름다움과 편리한 쓰임새를 두루 충족하는 진정한 명품의 가치를 보여준다.

○ 선비정신이 깃든 공간

사랑방은 선비들이 인격과 학문을 닦는 공간으로 가구와 소품 역시 담백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전통 선비 목가구’전에선 아담한 크기와 비례의 아름다움, 은은한 나뭇결을 드러낸 문방가구 40여 점을 내놨다. 간결하지만 묵직한 무게감을 전하는 가구들은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의 미덕을 드러내는 동시에 옛것에 스며든 추억의 향기까지 선사한다.

요즘 주목받는 미니멀한 북유럽 가구와 소품에 열광하면서도 소박하고 정갈한 우리 옛 가구와 생활용품의 가치와 의미를 낯설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전시들이다. 공간별로 고루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결합한 낡은 물건들이 보면 볼수록 빛이 나고 탐이 난다. 뭐든 쉽게 사서 쉽게 버리는 시대, 우리가 배워야 할 지속가능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옛 부엌의 아름다움: 백항아리와 석간주#규방문화와 목가구#전통 선비 목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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