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차도르 속에 감춰진 이란 여성의 굴곡진 삶… 그리고 모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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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몫/파리누쉬 사니이 지음/허지은 옮김/628쪽·1만6800원/문학세계사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기구한 일생을 살게 된 소녀의 이야기다. 이란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16세 소녀 마수메. 상급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마수메는 약사 사이드와 사랑에 빠졌다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에 의해 반강제로 얼굴 한 번 못 본 남성과 중매결혼을 하게 된다. 자신의 공부를 지지하는 남편 하미드의 모습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하미드가 이란 왕정 전복을 꿈꾸는 좌파 혁명가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수메의 삶은 격동의 이란 현대사 속으로 송두리째 휩쓸려 들어간다.

소설은 1979년 이란 혁명을 전후한 50년 동안 마수메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따라가는 형식이다. 혁명 이후 들어선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 의해 반혁명분자로 몰린 남편이 처형되고, 무자헤딘에 가담한 큰아들마저 수감되면서 마수메는 졸지에 ‘처형된 공산주의자의 아내이자 반역자 무자헤딘의 어머니’라는 멍에를 쓰게 된다. 둘째아들마저 징병돼 이란-이라크 전쟁에 끌려가면서 그녀의 삶은 두 아들과 막내딸을 세상의 거친 파도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으로 변한다.

이란 혁명이 국민의 삶에 가져온 변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많은 이 책은 이란 정부에 의해 두 번이나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란 정부에서 이란 여성의 삶에 대한 여러 건의 연구를 수행한 이란의 여성작가 파리누쉬 사니이(64)는 자신의 연구 자료를 기초로 마수메라는 인물을 빚어냈다. 자유연애가 금기시되고,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악몽 같은 초야(初夜)를 치르며, 딸이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란 여성의 억눌린 삶을 대변하는 인물인 마수메는 히잡과 차도르 아래 감춰진 그들의 내밀한 삶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격동의 이란 현대사 한복판에서 가족을 부둥켜안고 분투하는 마수메의 모습은 굴곡진 현대사를 헤쳐 온 한국의 어머니상과 겹쳐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소설은 인고의 어머니상을 그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세상에 무심했던 마수메가 사회적으로 각성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이 만만치 않은 두께의 이 책을 계속 붙잡고 있게 하는 힘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나의 몫#마수메#중매결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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