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니의 운동은 아들 대머리 때리는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작가 간병기 담은 日만화 번역 출간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속 한 장면.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잠깐 맑은 정신을 찾자 아들은 반가워하지만 곧 아들을 남편으로 착각하
고 만다. 라이팅하우스 제공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속 한 장면.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잠깐 맑은 정신을 찾자 아들은 반가워하지만 곧 아들을 남편으로 착각하 고 만다. 라이팅하우스 제공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족을 지치게 만든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는 70대 노인이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다 지치자 목 졸라 살해하기도 했다. 국내 치매 환자 57만 명 시대, 환자와 가족을 위로하는 만화가 이달 초 출간됐다.

일본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이팅하우스)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오카노 유이치 씨(63)가 10여 년간 치매를 앓는 어머니(90)와 함께하며 생긴 에피소드를 담았다. 작가의 필명인 페코로스는 탁구공만 한 작은 양파로, 그의 민머리를 빗대 친구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 고향 나가사키를 떠나 도쿄의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마흔 살에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귀향해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2000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시작됐다.

저자는 처음 5년 동안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어머니를 돌봤다. 하지만 뇌경색으로 치매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요양보호사의 권고로 노인복지시설로 어머니를 옮겼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시설을 방문해 모친을 돌본다고 한다.

오카노 씨는 2000년경부터 자신이 일하는 지역 정보지 한 귀퉁이에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려 연재했다. 그의 만화 데뷔작이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늙음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담은 이 만화는 지난해 7월 책으로 출간된 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제42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영화까지 제작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동글동글한 얼굴의 모자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머니가 하루 5분씩 하는 유일한 운동은 아들의 민머리를 찰싹찰싹 때리는 일. 아들은 ‘대머리라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두 손을 마주 잡고 걸으며 어머니에게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을 떠올리고, 기억을 잃은 어머니의 멍한 동공을 보며 다 잊어버려도 괜찮으니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얘기한다.

저자는 “치매 부모를 돌보는 분들 곁에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만 간절히 빌고 있다. 잊어버리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라고 후기에 썼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