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죽음은 ‘비창’의 선율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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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비창 교향곡’ 1악장(①)과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②) 악보. 차이콥스키는 같은 길이의 음표 7개가 죽 내려가다 끝이 올라가는 음형을 슬픔의 표현에 자주 사용했다.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중 ‘렌스키의 아리아’(③)에서 이는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
‘비창 교향곡’ 1악장(①)과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②) 악보. 차이콥스키는 같은 길이의 음표 7개가 죽 내려가다 끝이 올라가는 음형을 슬픔의 표현에 자주 사용했다.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중 ‘렌스키의 아리아’(③)에서 이는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
휴일 아침, 포털 검색어 1위가 ‘차이콥스키’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일일까. 알고 보니 TV 프로그램에 “그는 동성애자였고 이를 알게 된 법률학교 동문들의 강요로 자살했다”는 내용이 나온 것입니다.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서프라이즈’ 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자살이 맞을까요? 죽기 직전 차이콥스키의 심리 상태를 살펴보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가 일기나 편지에 이를 직접 암시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비창’의 선율에 사용된 시나 ‘가사’를 알아보면 어떨까요?

“농담이겠지…‘비창’은 독창이나 합창이 들어가지 않은 교향곡인데 무슨 가사가 있다고.” 맞습니다. 그러나 단서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이 교향곡의 1악장에는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슬픈 선율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선율은 차이콥스키에게 새롭지 않습니다. 같은 길이의 짧은 일곱 음표가 이어지는데 그 끝이 살짝 올라갑니다.

그는 초기 가곡인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관현악 모음곡 3번 1악장 ‘비가’(엘레지), 교향곡 4번 2악장에서 이런 선율을 썼습니다. 예부터 하행(下行)음형은 탄식, 슬픔, 애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지만 차이콥스키의 이 음형은 특히 개성이 뚜렷합니다.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렌스키의 아리아 ‘어디로 갔나, 내 아름다운 날들은’은 끝이 들리지 않고 첫 음이 살짝 긴, 변형된 형태로 등장합니다.

이제 ‘비창’과 비슷한, 이 곡들과 관련된 글귀들을 죽 병렬해 볼까요.

“모든 즐거움에서 떨어져 나와, 나는 홀로.”(‘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가사)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모든 것이 암흑 속.”(‘렌스키의 아리아’ 가사)

“과거를 탄식하고 그리워하지만 새롭게 시작할 의지도 용기도 없습니다.”(차이콥스키가 교향곡 4번 2악장의 내용에 대해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

<음원제공 낙소스>
<음원제공 낙소스>
어떻습니까. 비슷한 선율을 가진 작품에 대해 연관된 모든 텍스트가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괴롭고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같은 일련의 음형 속에서 가장 절절하고 서글픈 선율을 뽑아내 대작을 완성한 직후 차이콥스키는 갑자기 사망한 것입니다.

저는 요즘 차이콥스키의 비감한 선율을 실컷 듣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서울시 주최로 열리고 있는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19∼27일)에서 유독 많은 참가자가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와 ‘렌스키의 아리아’를 예선 과제곡으로 준비했거든요. 슬퍼지냐고요? 글쎄요…. blog.daum.net/classicgam/2

유윤종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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