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毒이 든 초콜릿처럼… 달콤살벌한 가십의 양면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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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초콜릿/조지프 엡스타인 지음/박인용 옮김/312쪽·1만5000원/함께읽는책

짜릿짜릿하다.

솔직히 그간 맘고생 많았다. 회사에선 두셋만 모여도 상사 ‘뒷담화’에 열광했다. 배우 A양 소문이 돌면 인터넷 뒤지며 눈을 번득거렸다. 하나 찝찝함도 컸다. 고교 시절 화장실에서 숨어 피우던 담배 맛 같다고나 할까. 당기는데 떳떳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어깨를 툭 쳐 준다. 멀리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부터 사람들은 가십에 열광했단다. 인품이 고매한 귀족이나 학자 같은 이들도 예외가 아니란다. 아, 옆 칸에서 꽁초 빨던 반장을 마주쳤을 때 이렇게 기뻤을까. “가자, 가십의 향연으로. 나와 함께 가자. 오랜 슬픔 뒤에 그런 축제가 있어야지.”(셰익스피어 ‘실수 연발’ 중에서)

말 나온 김에 가십 예찬을 펼쳐 보자. 함께 수군거린다는 건 뭔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대화는 대체로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우리끼리니까”로 물꼬를 튼다. 얼마나 아름다운 지란지교인가. 타인을 제물로 정신건강도 윤택해지니 이 또한 널리 이롭다. 사회적으로도 가십은 가치가 크다. 절대 권력으로 느껴지던 지도층이나 명망가들의 진짜 얼굴을 파악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최소한 그들도 고만고만하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자괴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오호라, 그렇다면 가십은 신이 주신 선물이란 말인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에 따르면 ‘성난 초콜릿(raging waxy chocolate)’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타인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실체를 알고 싶다. 가십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달짝지근한 꿀을 좇는 벌처럼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책은 하나 더 얘기한다. 그걸 집어삼키는 순간, 입안에서 달콤했던 가십은 목구멍에서 돌변할지 모른다. 녹아내린 초콜릿 속엔 식도를 태우는 독이 들었을 수도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라. 사회가 발전하며 온갖 루머와 소문이 넘쳐흐른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고, 확인도 검증도 쉽지 않다. 하나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 입고, 어떤 이는 목숨도 끊는다. 하나만 자문해 보자. 킬킬거리며 벌였던 그 말잔치. 그걸 듣고 옮기는 게 그리 중차대한 일인가. 가십이 사실이라 한들 각자의 인생에 무슨 소용이 있나. 가십이 자본과 결탁해 양산한 저 수많은 파파라치 부대에 꽃다발이라도 안겨야 하나.

왜 이랬다 저랬다 하나 싶지만 해답은 간명하다. ‘선’은 지키자는 소리다. 가십은 일종의 배변과 같다. 당연한 인체 활동이다. 때론 시원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하지만 과하면 탈이 나고, 아무데서나 하면 곤란하다. 벽에 × 쳐 바르면 인간의 존엄성도 무너진다. 뭐든 적당히 하라. 너무 빠져들면 언젠간 뒤통수를 치니까. 하긴 ‘우리끼리 얘긴데’ 당신이 손 털고 일어나도 가십은 여전히 활개를 칠 것이다. 어디 싸는 게 우리뿐이겠는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성난 초콜릿#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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