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싸인’의 첫 녹화에 임한 배우 류승수는 “이 (작은) 눈으로 여기까지 온 건 기적”이라면서 “다시 태어나면 연예인 말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보고 싶다. 평범이 비범”이라고 했다. 채널A 제공
배우 류승수(42)를 인터뷰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물었다. “누구?” 왜, 그, 있잖아요. ‘추적자’에서 검사 역 하고 ‘달마야 놀자’ 묵언수행 스님 역. 연기파 조연 배우. “아!” 확실히 이름이나 얼굴보단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다, 이 사람.
“‘추적자’ 마지막 법정 장면 있죠? 제 대사가 36쪽 분량이었어요. 토하는 줄 알았죠.” 커닝이라도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단다. “근데 그럼 좋은 연기가 안 되니까. ‘멘붕(멘털 붕괴)’이 왔죠. 옆에서 손현주 선배는 놀리고…. 마지막 방송 당일 오전 10시에야 촬영이 끝났어요. 마지막 대사 치고 어두운 세트장을 빠져나오는데 햇볕이 저한테 쫙 비쳐오더라고요. 그런 기분 있죠? 출소하는 느낌….”
류승수는 지난해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나왔다. SBS 드라마 ‘추적자’의 주관과 격정으로 뭉친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법과 원칙의 신봉자 최정우 검사 역으로 빛을 발했다. 지난달에는 연기 인생 20년 만에 처음 악역을 맡았다. KBS2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시리우스’의 마약밀매업자 역이었다.
그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25일 처음 방영되는 채널A 특별기획 ‘싸인’(매주 월요일 오후 11시)의 진행자로 발탁된 것이다. 충격적인 범죄 실화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재연하면서 진실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류승수는 “오늘 첫 녹화인데 일부러 수염을 안 밀고 왔다”고 했다. “이런 프로는 진행자의 목소리 톤이 중요하죠. 누굴 갖다 놔도 문성근 정진영 김상중 선배의 ‘그것이 알고 싶다’ 톤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전 다르게 갈 겁니다. 의상도 정장을 입되 수사관의 출근 복장 느낌을 주고 싶어요. 재연 드라마 촬영 현장에 직접 나갈 준비도 돼 있어요.”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97년 박찬욱 감독 영화 ‘삼인조’의 단역으로 데뷔했다. ‘달마야 놀자’ ‘황산벌’ ‘외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고지전’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겨울연가’ ‘종합병원2’ ‘뿌리 깊은 나무’ ‘추적자’ ‘엄마가 뭐길래’로 안방극장을 찾았다. 거의 조연이었다. 출중한 연기력으로 다작했지만 ‘조명’은 그를 비켜갈 때가 많았다. “‘고지전’에서는 배우 중에서 저만 다섯 개 전투에 다 참가했는데도 영광은 제게 오지 않더군요. 다른 배우를 도와주는 사명을 타고났나 봐요. 욕심 많던 젊은 시절엔 고민도 많았죠. 지금은 조명이 오면 오히려 부담스러워요.”
‘싸인’으로 그는 묵직한 조명을 받게 됐다. “연기자로서 시사교양 프로 진행자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캐스팅이죠. 제가 최소한 ‘쌈마이’는 아니니까 이런 제안이 온 거겠죠?”
류승수는 2009년 에세이 ‘나 같은 배우 되지 마’를 썼다. 후배들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또 다른 연기자 입문 서적도 집필 중이라고 했다.
대중영상매체에서 활약하는 배우치고 류승수의 눈은 작다. “아…. 저보다 작은 배우는 없어요. 좀만 더 눈이 컸으면 이미 할리우드에 갔을지도 몰라요. 크핫. 저는 눈빛으로 하기 힘든 연기를 얼굴 각도와 표정으로 해내려고 늘 계산해요.” 짙은 눈썹 아래로 그가 작은 눈을 빛낸다. “근데요. 제가 쉰 넘고 예순 되면 이 눈이 그렇게 작아 보이진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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