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과 건조함 사이… 정공법의 미학

  • Array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피아노 김선욱 베토벤 ‘황제’ 협연 ★★★☆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가 18일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가 18일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4월에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다섯 번째 음반을 낸다.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하는 베토벤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황제’다.

수많은 명연이 있는 두 작품의 음반 목록에 아시아 ‘신흥’악단과 25세 피아니스트가 어떤 새로움을 더할까.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 I 연주회와 17일 특별연주회에서 이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앞선 네 장처럼 연주회 실황을 음반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황제’에서 김선욱과 서울시향은 정공법을 택했다. 강약 대비나 길고 짧은 맥락의 완급 변화 모두 두드러지지 않았고 상당 부분 개성을 지운 연주였다. 김선욱이 곡을 장악하는 호흡은 완숙했고 손가락 터치는 깔끔했다. 그러나 표정은 잘 읽히지 않는 편이었다. 3악장 론도에서 상행(上行)으로 폭발하듯 굴러가는 악구들에서조차 강약의 대조를 억제했다. 진지함과 건조함의 사이를 줄타기하는 인상이었다.

교향곡 5번 역시 정공법에 가까왔다. 자주 백열적(白熱的)일 정도로 기복을 강조해 해외에서 ‘카라얀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던 정명훈은 개성을 뚜렷이 하기보다는 그 나름의 ‘전범(典範) 만들기’를 시도했다. 2악장의 극적인 클라이맥스에서조차 총주(總奏)를 구름으로 덮듯 안으로 폭발시켰다.

서울시향의 현은 최근 합주의 완숙을 넘어 살짝 휘황한 색채가 얹히고 있다. 다만 단원들 사이 음량이 균질하지 않은 부분이 언뜻 언뜻 보였다. 노래하듯 입까지 벌려가며 리듬을 장악한 팀파니스트의 역연은 인상적이었다. 최종 편집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팀파니에 트럼펫의 고음역이 얹히는 부분의 상쾌한 질감이 음반의 전체 인상을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울시향과 DG가 국내 음반시장에 크게 신경을 썼다면 중용과 전체적인 균형에 신경 쓰는 전략은 유리하다. 반대로 세계 음반계의 주목을 고려했다면 개성적인 표현에 더 유의했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는 연주가의 평소 철학이 더욱 중요하다. 콘서트에 앞서 김선욱은 “완벽한 질량의 베토벤을 너무 화려하지도, 밋밋하지도 않게 연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8일 연주회에서는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커튼콜에 응하던 정 감독 앞에서 갑자기 서울시향이 비제 ‘아를의 여인’ 모음곡 중 ‘파랑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제이슨 크리미 트럼본 부수석이 한국어로 “마에스트로 정명훈 선생님의 귀빠지신 날을 축하 드린다”고 말하자 정 감독과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축하 메시지 영상에 이어 서울시향의 반주로 관객들이 다 함께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렀다. 정 감독은 협연자 김선욱에게서 케이크와 꽃다발을 받고 “서로 사랑하며 일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정명훈#황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