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징크스 깨졌다, 말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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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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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말춤 전세계 휩쓸자 사극 ‘마의’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주인공(조승우·왼쪽)의 말은 외모와 성격 둘 다 갖춰야 하지만 타고 달리는 장면에만 나오는 말들은 못생겨도 된다. 암말이 특히 
온순해 선호된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싸이는 경기 고양시의 한 경마클럽에 있는 마구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말 타는 기수를
 흉내 낸 말춤으로 세계적 붐을 일으켰다. MBC 화면 캡처·동아일보DB
주인공(조승우·왼쪽)의 말은 외모와 성격 둘 다 갖춰야 하지만 타고 달리는 장면에만 나오는 말들은 못생겨도 된다. 암말이 특히 온순해 선호된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싸이는 경기 고양시의 한 경마클럽에 있는 마구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말 타는 기수를 흉내 낸 말춤으로 세계적 붐을 일으켰다. MBC 화면 캡처·동아일보DB
말(馬)이 대세다.

전설의 ‘애마부인’ 시리즈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영화 ‘챔프’(53만 명·2011년), ‘그랑프리’(17만 명·2010년), ‘각설탕’(130만 명·2006년) 등 말이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영화들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해 왔다. 심지어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워 호스’(10만 명·2011년)의 국내 성적도 참담했다. 영화계에서는 ‘말을 피하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싸이의 ‘말춤’ 덕분일까. 이 징크스가 깨지고 있다. 말춤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키는 가운데 MBC ‘마의(馬醫)’가 동시간대 시청률(14.3%·23일 방영 AGB닐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 백광현이 어의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극중 말의 명품 연기가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누워서 침을 맞는 말,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말들이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낮에는 정숙하지만 밤에는 놀 줄 아는 여인….” 8회에서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이 강지녕(이요원)에게 말하는 대사는 ‘강남스타일’의 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 습관을 알아야 말을 부린다

‘마의’ 5회. 광현(아역배우 안도규)의 애마 ‘영달’은 마구간에서 피를 흘리며 슬픈 눈동자를 껌벅거렸다. 광현도 훌쩍이고, 영달은 콧바람을 내쉬고 머리를 들어올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이 장면의 포인트는 누워서 연기를 하는 말이었다. 초식동물인 말은 항상 방어태세를 취하기 위해 잘 때조차 앉지도 눕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극에서 항상 보는 말도 서 있거나 달리는 말이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제작진은 말이 누워 있도록 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한 가지 방법은 말에 올라 탄 상태에서 고삐의 한쪽만 잡아당겨 머리를 불편하게 만들어 눕히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10∼15분 정도 말을 눕힐 수 있다. 물론 숙련된 조련사나 스턴트맨이 해야 한다.

말의 나쁜 버릇도 때론 쓸모가 있다. 짜증이 날 때마다 앞다리를 드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 말은 배우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평가다. 마의 승마팀 관계자는 “이런 악습이 있는 말은 잘 타일러 앞다리 드는 장면만 연기하게 한다. 시킨 대로 앞다리를 들었을 땐 칭찬해 준다”고 말했다. 칭찬할 때는 몸통 옆 부분을 토닥거리거나 앞쪽 미간 사이를 쓰다듬어주는 방법이 있다.

○ 완벽한 말 연기자는?

A급 연기자를 꿈꾸는 말들은 미끈한 체형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말귀에 경 읽기’처럼 꿈쩍하지 않는 성격이 중요하다. 100여 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뒤엉킨 소란스러운 촬영장에서 너무 예민하면 촬영이 힘들다. 승마장 관계자는 “소리에 예민하지 않고 잘 달려주는 착한 말들을 엄선한다. ‘아랑사또전’ ‘주몽’ ‘이산’ ‘계백’ ‘동이’에 주인공 말로 단골 출연한 ‘라파엘’은 순하고 잘생긴 완벽한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어 유독 슬퍼 보이는 말들도 섭외 1순위다. 검은 눈동자가 초롱초롱해도 흰자위가 지나치게 희면 이른바 ‘고래 눈’이라 불리며 섭외에서 제외된다. 자칫 무서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섭외가 되면 일당 20만∼30만 원을 받는다.

○ 말, 정말 말 안 들어요

말은 지능이 그다지 좋지 않다. 뇌 중량이 약 630g으로 사람 뇌(1300g)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체중과 비교하면 말의 뇌는 몸집에 비해 훨씬 작다.

그래서 말 연기자에겐 반복훈련이 필수다. 주인공과 함께 걸어가는 장면을 위해서는 촬영 전 수십 번씩 같은 길을 걸어 봐야 한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아 피아노 줄로 다리를 묶어 끌어당길 때도 있다. 말의 콧바람 한 줄기에 머리카락이 날려 NG가 나기도 한다. 배우가 말을 보며 열심히 대사를 하다가도 말이 숨을 크게 쉬어버리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제작진들은 곤혹스럽다. 돌발 상황에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눕혀 놓았던 말이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면 주위에 있던 배우와 제작진은 소스라치게 놀라기 마련이다.

이 같은 온갖 촬영의 어려움에도 말은 분명 2012년의 흥행코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싸이는 세계보편적인 문화코드로서 말춤을 흥행시킬 수 있었다. 반면 한국 대중문화에서는 말이 잘 등장하지 않았을뿐더러 성적인 의미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의’의 경우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중심으로 소재가 주는 재미를 살려 흥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말#말춤#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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