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기타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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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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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비. 기타로 그린 기린 그림. 트랙 #30 Chet Atkins ‘Sails’(1987년)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 걸린 이병우 기타 콘서트 포스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 걸린 이병우 기타 콘서트 포스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고딩’ 때까지 난 골방 기타리스트였다. 친형에게 기타를 배워 집에서 혼자 메탈리카, 신승훈의 곡을 연주하며 즐거워했다. 음악 잡지를 펼칠 때만은 마음이 불편했다. 무섭게 생긴 기타리스트 ‘횽’들은 화보 속에서 날 향해 손가락질했다. “골방에서 기타 치는 애송이가 이러쿵저러쿵 입만 나불대.” 그들의 다문 입술이 환상 속에서 움직였다. “무릇 남자라면 밴드에 들어가 호방하게 로큰롤 세상을 뚫고 나가야지…, 베이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밴드에 들어갔다. 첫 합주곡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무시무시한 연속 벤딩(줄을 지판과 수직으로 밀거나 당겨 음정을 높이는 기술)이 등장하는 기타 솔로 연습을 독려해준 이는 기타 잘 치는 선배 B 형이었다.

둘의 싸움이 시작된 건 다른 형들이 나라 지키러 먼저 떠난 뒤였다. 스승 B 형과 난 매일같이 티격태격했다. B는 포크와 블루스 마니아였고, 나는 록과 메탈만 좋아했으니까. 각자가 골라온 곡에 서로가 불퉁댔다. 둘의 사이좋은 하모니는 에릭 클랩턴의 ‘사인’(1992)이나 익스트림의 ‘홀 하티드’(1990) 같은 다이내믹한 통기타 연주곡에서나 볼 수 있었다.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병우 기타 콘서트에 갔다. ‘괴물’ ‘왕의 남자’의 선율을 만든 그를 영화음악가로 기억하는 이들이 지금은 더 많다. 그러나 그는 조동익과 1980년대 포크 듀오 ‘어떤 날’로 활동하며 명반을 남겼고, 89년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을 필두로 기타 솔로 앨범만 5장이나 낸 베테랑 기타리스트다.

그는 신기한 기타 두 대로 공연을 끌고 갔다. 울림통 없이 막대 모양으로 길쭉한 ‘기타 바’와 몸통만 뒤집으면 ‘변검’처럼 통기타와 클래식기타를 오가는 ‘듀얼 기타’였다. ‘장화, 홍련’ 삽입곡 ‘돌이킬 수 없는 걸음’, 파이프오르간과 함께한 ‘아란후에스 협주곡’, 기타 바와 이펙터를 사용한 신곡 ‘북극 여행’ 등의 연주는 신비로웠다.

감정 선을 내준 곡은 따로 있었다. 그는 이날 자신이 작곡한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주제곡 ‘우린 할 수 있어’를 초연했다. 가수 이적과 원주시립합창단이 힘을 보탰다. 2013년 한국을 찾을 지적장애인들이 이 곡을 듣고 아름다운 도전을 해줬으면 한다. 오순도순 겨루되 티격태격 다투지는 말고.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길을 걸어간다. 꿈꾸던 세상에 다가간다. …어긋난 길은 없어. 잘못된 길도 없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싱글노트#기타#이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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