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애니팡, 공평하다… 몰입된다… 친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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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손가락
누구에게나 똑같이 1분만 팡팡… 점수-순위 오를때 엔도르핀 팍팍
하트 주고받으며 품앗이 ㅎ ㅎ

《경쾌한 언어유희의 시인 오은 씨가 격주로 아케이드게임부터 모바일게임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손가락으로 만나는 게임 이야기를 펼칩니다.》

‘애니팡’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좀체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추석 때 친척들이 모여서 한 것은 윷놀이가 아니었다. 서넛이 바닥에 엎드려 방바닥에 놓인 태블릿PC를 바라보며 검지만 내민 채 침을 삼켰다. 동물들이 등장하자 손가락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경쟁에서 협동으로 바뀌었다. 의도치 않게 내 손가락과 네 손가락이 서로를 휘감고 넘어지기도 한다. 1분 동안 그렇게 집중했던 적이 대체 언제였던가. 마침내 게임이 끝나고 화면 위로 폭죽이 터지자 쥐고 있던 주먹에 사이좋게 땀이 맺혔다.

애니팡은 동물을 뜻하는 애니(ANImal)에 터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부사인 팡(PANG)이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팡은 영어로 ‘갑자기 일어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뜻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아찔하고 섬뜩한 조어다. 자신을 제발 터뜨리지 말아달라고 눈망울을 똥글똥글하게 만드는 동물들의 속내를 우리는 이렇게 고쳐 읽는다. 부디 나를 친구들과 함께 터뜨려주세요. 한시도 망설이지 마세요.

엄마는 처음에 이 게임을 “잔인하다”고 말했다. 동물들이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장면을 보고 난 후였다. 한 친구는 “애니팡, 그게 뭐라고”라 평하며 열풍에 휩싸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할 자유도 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열중할 때, 그 사람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모든 일에 성과가 필요한 건 아니다.

터뜨리는 건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어린 시절, 손가락이 닳도록 했던 ‘스노우 브라더스’나 ‘버블보블’을 생각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와 같은 게임성은 애니팡을 성공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다. 어떻게 할지가 빨리 파악되지 않을 때, 게임하는 자는 길을 잃는다. ‘헥사’를 즐겼던 세대는 화면을 보자마자 이 게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반상회에서도 애니팡이 화제의 중심이라고 한다. 어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애니팡의 손쉬운 방식은 ‘게임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깨뜨렸다.

절묘한 손맛은 애니팡 중독을 이끈다. 동물들이 삼삼오오 터질 때, 우리는 어떤 아찔함에 사로잡힌다. 다음 판에는 더 잘할 거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다시 하기’ 버튼을 누른다. 카카오톡 친구들의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게임성에 기여한다. 신기록을 세워 순위가 점프할 때,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다. 생전 순위라는 것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에게, 애니팡은 어떤 쾌감을 선사한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내가 너보다 잘해!

애니팡에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1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 아직까지는 게임을 하게 해주는 아이템인 토파즈 말곤 게임 내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살 수도 없다. 이 공평함이야말로 애니팡이 지닌 진정한 미덕이다. 스마트폰의 속도가 플레이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백지상태에서 나란히 출발하는 것이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추가로 보너스 점수를 더 얻을 수는 있지만, 순위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수치는 결코 아니다. 레벨 상승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또 게임을 해야 한다.

처음에 하트가 5개밖에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 게임 시작 후 8분이 지나고 나서야 하트가 하나 생겨난다는 점은 이 게임의 중요한 포인트다. 연속적으로 게임을 하고 난 뒤라면 또다시 3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하트가 다 떨어지고 나면 습관적으로 하트를 보내게 된다(자신의 것이 떨어져도 남에게 하트를 보낼 수 있다-편집자). 순위 차트에서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가며, 차례차례로. 누군가에게 하트를 보낼 때, 우리는 나중에 나도 그 사람에게 하트를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일종의 사이버 품앗이, 사이버 물물교환인 셈이다.

하트란 무엇인가. 터치 한 번이면 돈 들이지 않고 베풀 수 있는 선심이다. 이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틀래치(potlatch)라는 풍습을 생각하게 한다. 때때로 축하연을 열고 손님들에게 아낌없이 선물을 주는 것인데, 축하연의 규모와 선물의 가치로 주최자의 체면은 세워지거나 깎였다고 한다. 애니팡에서는 하트가 그 선물 역할을 해낸다. 그것은 우선 나와 네가 가까운 사이임을 확인하는 징표다.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먼저 내미는 어색한 손 같기도 하다. “너 잘 지내고 있니?”라고 머리 긁적이며 하는 인사 같은 거. 많게는 하루에 스물네 번이나 표현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거. 그 마음을 쓰는 데 돈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의 크기까지 무시하지 마라. 누군가가 1초를 쓴 덕분에 당신은 1분을 얻었으니.

[채널A 영상] “애니팡 최고수 가리자” 7일 결승전

● 오은 씨는…

서른 살이 넘었지만 호기심만이 천국이라고 믿는 철없는 시인. 나오는 게임들은 웬만하면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어 한다. 두세 번 해보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게임인지 아닌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임인지 아닌지 결단을 내리곤 한다. 거기서 살아남는 게임은 그야말로 질리도록 한다. 게임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에겐 수다나 게임처럼, 비생산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오은 wimwender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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