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과 자연채광이 어우러져 반짝거리는 마법의 성…. 올 3월 리노베이션을 마친 뒤 다시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청담동 ‘구찌’ 플래그십스토어의 첫 인상이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세계적으로 적용 중인 스토어 디자인은 자연채광을 최대로 활용한 점이 특히 돋보였다. 국내에선 이곳에서만 제공되는 특별한 서비스도 있다. 구찌의 아이코닉 백 중 하나인 ‘뉴 뱀부’ 백에 대한 스페셜 오더(특별주문) 서비스다. 동아일보 여기자 2인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백을 만들기 위한 구찌의 ‘스페셜 오더’ 서비스 과정을 함께 체험했다.
유럽의 명품 전문가들은 현대의 명품 플래그십스토어를 유럽 중세 성당에 종종 비유한다. 플래그십스토어의 건축, 인테리어, 그리고 제품들의 예술적 가치가 그만큼 휼륭하다는 뜻이다. 서울 청담동 구찌의 플래그십스토어에서는 명품 가치의 정점, ‘메이드 투 오더’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다. 가죽의 종류와 색상을 선택하는 모습.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라이프스타일 고려한 나만의 선택=김현진 기자
구찌 플래그십스토어의 ‘메이드 투 오더’ 서비스는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3층 VIP살롱에서 진행됐다. 이 서비스는 크게 가방 사이즈(라지, 미디엄, 스몰 중 하나), 소재(악어가죽과 타조가죽 중 하나), 색상, 장식 색상, 이니셜 등 5단계의 선택 과정을 거쳐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완성해준다.
평소 주변 동료들로부터 “살림을 다 싸 갖고 다니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소지품이 많고, 일할 땐 노트북 무게 탓에, 쉴 때는 날로 튼실해지는 어린 딸 덕분에 만성 어깨 결림에 시달리는 점을 고려해 좀 더 가볍고 실용적인 타조가죽을 고르기로 했다. 크기는 보기만 해도 푸근한 가장 큰 사이즈로 선택.
다음은 색깔을 고를 차례. 무려 18개의 색상 가운데 하나를 고르려는데 그 옛날 치른 대입수학능력시험 때, 아리송한 마지막 객관식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와 같은 비장한 마음이 스쳤다. 최근 아기용품을 사들이면서 나도 모르게 핑크색에 중독된 터라 핑크색 ‘모브 블러시’에 가장 눈이 갔지만 무채색 또는 카키 톤이 많은 평소 옷차림과 취향을 고려할 때 좀 더 차분한 톤이 좋겠다 싶었다. 푸른 호수를 닮은 ‘레이크 블루’와 군복을 연상케 하는 카키색 ‘유니폼’ 중 최종 낙점된 것은 카키. 선택을 도와주던 구찌 관계자 역시 “처음엔 튀는 색상을 염두에 두다 결국 무난하고 범용성 높은 색상을 구입하는 고객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니셜은 구찌 플래그십스토어를 닮은 쨍한 골드색으로 고르기로 했다. 장식은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앤티크 골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 취향을 100% 반영한 나만의 백. 딸에게, 또 그 아랫대에 대대로 물리는 ‘스토리가 담긴 추억의 가방’이 될 수 있을 듯했다. ○ ‘첫 경험’ 구찌와의 인연=김현수 기자
나의 첫 ‘명품가방’은 구찌였고, 입사 후 첫 명함지갑도 구찌였다. 둘의 공통점은 캔버스 한가득 구찌의 로고 ‘G’가 가득했다는 것.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구찌=로고 플레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새롭게 단장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플래그십스토어를 다녀와 보니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스토어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정면 진열대에는 고급스런 가죽과 대나무 핸들이 특징인 ‘뉴 뱀부백’이 가득했다.
뉴 뱀부백의 대나무 핸들을 만져보면 구찌의 장인정신에 놀라게 된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가방을 만들 재료가 부족하자 일본에서 들어온 대나무 줄기에 열을 가해 반원 형태로 만들어 현재까지 이어온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뉴 뱀부백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장인들이 10시간 동안 140여 개 조각을 매만져 완성한다.
스페셜 오더가 이뤄지는 VIP살롱은 자연채광과 황금빛 조형물, 구찌의 이브닝드레스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었다. 다크 브라운 계열 쇼파에 앉으니 담당 직원이 뉴 뱀부백 가방이 그려진 카드를 건넸다. 스몰, 미디엄, 라지 중 사이즈를 고르라는 뜻이다.크지도 작지도 않고 회사에 갈 때에도, 친구를 만날 때에도 좋을 법한 미디엄 사이즈를 골랐다. 스트랩이 달려 있는 점도 좋았다. 이번엔 소재. 악어가죽 가운데 고를 수 있는 색깔은 무려 36가지에 달한다. 광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소재의 감촉도 다양했다.눈에 띄는 것은 핑크계열의 ‘모브 블러시’와 베이지 빛이 도는 ‘캐러멜 로즈’. 악어 가죽이 클래식하니 색깔은 튀는 것으로 해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결국 선택은 ‘모브 블러시’. 다음은 대나무 핸들과 가방을 이어주는 메탈 색깔. 골드, 실버, 앤티크 골드, 앤티크 실버 네 가지가 나와 있다. 가죽 색깔이 핑크계열이니 메탈은 튀지 않게 앤티크 실버로 정했다. 가죽에 이니셜을 새기는 방법도 3가지다. 가방을 열 때마다 이름이 너무 튀는 것도 부담스러울 테니 음각처리로 택했다. 이렇게 선택을 하다보면 어느새 주문서가 완성된다.
주문서를 이탈리아 장인들에게 보내고 두 달을 기다리면 특별한 패키지에 담겨 한국으로 온다고 한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에게 두 달은 너무 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가방이라면 두 달의 시간도 특별함으로 다가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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