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남자 대학로 뜨면 배꼽 분실 주의보 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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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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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에 뛰어든 47세 서현철… 허 찌르는 연기로 코믹극 캐스팅 1순위
‘미친 존재감’ 42세 김원해… 몰입연기 빨려들다보면 웃음폭탄 터져

관객의 배꼽을 확실히 책임지는 두 중년배우가 대학로 희극지왕(喜劇之王)의 자리를 놓고 닭싸움 한판을 펼친다. 서른에 연극에 입문해 타이밍의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훔치는 서현철(왼쪽)과 불혹을 앞둔 나이에다시 연극판에 뛰어들어 반전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있는 김원해.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관객의 배꼽을 확실히 책임지는 두 중년배우가 대학로 희극지왕(喜劇之王)의 자리를 놓고 닭싸움 한판을 펼친다. 서른에 연극에 입문해 타이밍의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훔치는 서현철(왼쪽)과 불혹을 앞둔 나이에다시 연극판에 뛰어들어 반전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있는 김원해.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외모도 다르고 연기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너무 웃긴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래서 대학로에서 희극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캐스팅 1순위다. 뮤지컬 ‘전국노래자랑’과 연극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에 출연 중인 배우 서현철 씨(47)와 연극 ‘허탕’에 출연 중인 배우 김원해 씨(43)다.

서 씨는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출연 중인 두 작품 앞뒤로 영국을 대표하는 희극 ‘노이즈 오프’와 프랑스 희극의 진수를 보여주는 ‘웨딩스캔들-게이결혼식’에도 징검다리 식으로 출연하고 있다. 연말 무대화될 일본만화 원작의 창작뮤지컬 ‘심야식당’에도 캐스팅됐다. 2010년 연극열전 4 최고흥행작으로 꼽히는 미타니 고키 원작의 ‘너와 함께 라면’과 김영하 소설 원작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통해 ‘대학로 배꼽을 책임지는 배우’로 우뚝 섰다.

김 씨의 경우 다작은 아니다. 5·18 광주의 비극을 블랙코미디로 푼 ‘짬뽕’과 한국사회의 가족해체 현상을 블랙코미디로 푼 ‘오빠가 돌아왔다’ 등 주로 창작극에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그의 매력이 폭발한 작품은 2011년 출연한 ‘키사라기 미키짱’이었다. ‘번역극 어투가 어색해 싫다’며 창작극만 고집해온 그를 사실상 첫 외도에 나서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외모 콤플렉스와 허당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기무라 다쿠야 역으로 출연해 대학로 최고의 반전 코미디왕에 등극했다.

두 배우는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권위적인 폭력가장, 그러다 장성한 아들(오빠)에게 꼼짝 못하는 아빠를 번갈아 연기했다. 하지만 웃음코드는 좀 다르다. 충청도 출신으로 크고 선한 눈망울을 지닌 서 씨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도 관객의 허를 찌르는 타이밍의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훔친다. 동료 배우들조차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웃음폭탄이다. 서울 출신으로 깡마른 체구의 김 씨는 진한 몰입연기로 웃음을 끌어낸다. 무대 위에서 웃음기 하나 없이 너무도 진지하게 연기하는데 객석의 관객은 계속 킬킬 웃게 만드는, 그런 연기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춘 유일한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에서 네 살 연상의 서 씨는 코믹한 상황을 주도하는 덜 늙은 도둑 역을 맡고, 연하의 김 씨는 반 박자 늦게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는 더 늙은 도둑 역을 맡았다.

현실에선 반대다. 서 씨는 회식 자리에서 갑작스레 사회를 맡기면 급당황하는 소심한 스타일이다. 너무 점잖다고 별명이 ‘새끼 공자’였단다. 반면 김 씨는 어린 시절부터 회식 자리에선 마이크 못 잡으면 안달 나는 외향적 스타일이다. 학창시절 별명도 ‘까불이’.

김 씨는 “형님의 웃음연기 노하우를 배우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는데 정말 타고난 거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서 씨는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존재할 때만 웃길 수 있다”고 말했다. 웃음 본능이 더 강한 김 씨 역시 “이것저것 해봤지만 진정성 있는 연기만 한 무기가 없다”고 말했다.

둘은 늦깎이로 빛을 본 배우라는 공통점이 있다. 학창시절 내내 평범했다는 서 씨는 나이 서른에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서른 살까지는 남들처럼 살다가 서른 살 이후는 정말 내가 하고픈 걸 하고 살자고 결심했던 걸 실천에 옮긴 거죠.”

김 씨는 2003년 ‘난타’의 원년 멤버가 되면서 배고픈 연극인생을 접었다가 불혹을 앞둔 나이에 다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그 첫해인 2007년 그의 수입은 173만 원. 2009년 연극열전 시상식에서 “배역이 없어 집에서 야구 배트만 휘두르고 있으니까 초등학생 딸이 아빠 직업을 야구선수로 적더라”는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됐다.

그들과 같은 인생역전을 꿈꾸는 배우 지망생들에게 들려줄 말이 궁금했다. 서 씨는 “자기가 선택한 거니까 평생 빛을 못 봐도 후회 없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남들 평생 겪을 마음고생을 무명시절에 한꺼번에 몰아서 겪는다 생각해보라”며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김지은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연극#대학로#희극 연기#서현철#김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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