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결정적 순간’들… 시대의 ‘결정적 증언’들

  • 동아일보

보도사진 ‘매그넘’ 창립 카르티에 브레송 회고전
제자 마크 리부 ‘에펠탑의 페인트공’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생 라자르 역’ ⓒHenri Cartier-Bresson/매그넘 포토/유로크레온(왼쪽). 마크 리부 ‘에펠탑의 페인트공’ ⓒMarc Riboud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생 라자르 역’ ⓒHenri Cartier-Bresson/매그넘 포토/유로크레온(왼쪽). 마크 리부 ‘에펠탑의 페인트공’ ⓒMarc Riboud
《 사진에 멈춤과 움직임이 동시에 포착돼 있다. 운동의 에너지가 완벽한 구도의 고요한 풍경을 깨뜨리는 듯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길어 올린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녀 사진에, 자전거 타고 골목을 달리는 사람의 모습에 적막함과 역동성이 공존한다. 찰나를 통해 시공간의 통합을 이뤄낸 인물은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이다. 사진을 독립적인 예술로 끌어올린 작가의 1930년대부터 말년까지 사진미학과 생애를 돌아보는 세계 순회 회고전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전시로 2003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독일 영국 일본을 거쳐 이번이 11번째 순회전이다. 근대 사진을 대표하는 작가, 현대 사진영상의 선구자,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그룹 ‘매그넘’의 공동창립자였던 면모를 두루 짚은 전시에선 사진 250여 점과 더불어 자필 원고, 출판물 등 자료 150점, 데생 2점이 볼거리다. 9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7000∼1만2000원. 02-735-4237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8월 5일까지 열리는 아날로그 사진의 거장 마크 리부(89)의 ‘에펠탑의 페인트공’전은 매그넘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또 다른 프랑스 사진가의 회고전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사진기 다루는 법을 사사했던 그의 작업을 스승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8000∼1만2000원. 02-532-4407 》

두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사진가의 감독하에 전통적 인화방식으로 다시 프린트한 사진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사르트르, 피카소 등을 찍은 초상사진, 역사적 사건현장까지 20세기 풍경을 공통적으로 다루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엿보인다. 인위적으로 연출된 디지털 사진의 홍수 속에 인간미가 스며든 아날로그 흑백사진의 매력을 만끽할 기회다.

○ 시대의 눈

카르티에 브레송
카르티에 브레송
카르티에 브레송 전에 나온 작품은 작가와 프랑스의 전시기획자 로베르 델피르가 선정했다. 한국에선 이기명 총감독이 ‘찰나의 미학’ ‘시대의 진실’ ‘휴머니즘’ 등 5가지 관점으로 전시를 재구성했다. 이 씨는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작가는 셔터를 언제 누르는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는 결정적 순간을 강조한 작품으로 회화와는 다른 사진미학을 완성했다”고 소개했다.

전시에선 평범한 일상과 거리 풍경에서 보석 같은 아름다움과 정감을 찾아낸 사진과 중국 공산당의 집권 전후, 스탈린 사후 소련 사회 등 시대상을 기록한 사진이 어우러져 있다. 어느 쪽이든 조형적 완벽성, 사유와 감성의 조화가 깃들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왕의 대관식을 취재하면서 화려한 행사가 아니라 술에 취해 잠든 구경꾼을 바라보고, 인민 해방군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느긋하게 국수를 먹는 중국인을 포착하고, 머리끝까지 외투를 올리고 빗속을 걸어가는 조각가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인간적 면모를 전하는 사진들. 늘 인간을 향해 있던 시선에서 그가 ‘사진의 톨스토이’라고 불렸던 이유를 알게 된다.

○ 시대의 증언

마크 리부
마크 리부
마크 리부는 철탑의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안전장치 없이 곡예사처럼 일하는 남자의 날렵한 동작을 결합한 ‘에펠탑의 페인트공’(1953년)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꽃을 든 여인’(1967년)은 베트남 반전시위가 벌어진 미국 워싱턴에서 총검을 겨누는 군인에게 꽃을 건네는 17세 소녀를 찍은 것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엔지니어에서 사진가로 변신한 작가는 1952년 파리에서 매그넘의 공동창립자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만나면서 매그넘에서 활동해왔다. 이번 전시는 ‘파리의 사랑’ ‘마오 시대의 중국과 일본’ ‘시대의 목격자’ 등의 주제 아래 190점을 선보여 거장의 숨결을 오롯이 전한다. 유럽 사진작가 최초로 죽의 장막에 들어가 기록한 마오 시대의 풍경과 급속한 서구화의 길을 걷던 일본사회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사진전#매그넘#브레송#마크 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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