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현대미술의 새 명소 日 나오시마를 가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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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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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딴섬이 ‘예술 섬’ 되기까지
기업인­-­예술가­-주민이 일군 ‘아트 하우스’­ - ‘I ♥ 湯’ 관객 몰려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의 공동프로젝트인 미나미테라 곁을 마을 주민들이 한가롭게 걷고 있다. 주민들과 공존하는 현대 건축과 미술의 현장이다(위),  가도야의 방 안 수조에 띄워 놓은 디지털 숫자, 고오전자의 광학 유리 계단, 이시바시의 옛 소금창고에 그려진 아크릴 회화(왼쪽부터).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의 공동프로젝트인 미나미테라 곁을 마을 주민들이 한가롭게 걷고 있다. 주민들과 공존하는 현대 건축과 미술의 현장이다(위), 가도야의 방 안 수조에 띄워 놓은 디지털 숫자, 고오전자의 광학 유리 계단, 이시바시의 옛 소금창고에 그려진 아크릴 회화(왼쪽부터).
한국으로 치면 한려수도에 떠 있는 섬 중 하나에 불과한 나오시마. 이 섬을 현대미술의 명소로 만든 것은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안목 있는 한 기업인의 집념과 세계적인 건축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이해와 협조였다.

○ 베네세 그룹 회장 “경제는 문화의 하인”


이번 나오시마 취재 중 듣게 된 가장 신선한 뉴스는 내년 2월 이 섬에 안도 다다오를 위한 미술관이 개관한다는 사실이었다. 구체적인 장소와 설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공사가 상당 부분 진척되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안도가 최근 비밀리에 다녀갔다는 얘기도 있다.

‘나오시마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베네세그룹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은 ‘경제는 문화의 충실한 하인’이란 철학을 가진 인물. 장삿속으로 문화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는 ‘나오시마 프로젝트’ 착수에 앞서 섬마을 사람들을 위해 중학교와 마을회관, 선박터미널 등을 짓는 일부터 착수했다. 이미 60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앞으로도 30년 동안 계속해서 나오시마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사카 태생인 안도는 공고 출신으로 건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는 트럭 운전사와 권투 선수를 하는 등 소설 같은 삶을 살았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했고, 세계를 여행하며 안목을 넓혔다. 1995년 건축의 노벨상 격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물과 빛을 중시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했으며, 유리와 노출콘크리트 등을 사용해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차갑지 않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게 특징. ‘빛의 교회’ ‘물의 절’ ‘산토리 미술관’ 등을 설계했다.

○ 전통 가옥 7채, 현대미술 작품으로 변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은 달라지는 섬의 모습을 보면서 후쿠타케 회장의 진심에 감동했다. 그래서 또 다른 의욕적 프로젝트들이 추진됐다.

사람이 떠난 혼무라 지역의 전통 가옥 7채를 건축가와 작가들에게 의뢰해 현대미술작품으로 바꾼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 단순히 고택(古宅)을 리모델링한 게 아니라 각 공간을 다양한 현대미술작품으로 변형한 것이 특징이다. 오래된 집들은 다른 곳의 ‘민속촌’처럼 마을과 분리돼 있지 않다. 수십 채의 현대식 주택과 우체국, 슈퍼마켓 등과 함께 마을 안에 공존한다.

1998년 가장 먼저 리모델링된 ‘가도야(角屋)’.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왼쪽의 컴컴한 방에 넓은 수조를 파고 그 안에 1부터 9까지의 디지털 숫자를 띄워 놓았다. 마을 주민들이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같은 숫자를 보더라도 각각 자신의 처지에 따라 ‘상대성’을 갖고 대하게 된다”고 안내자는 설명했다. 고가(古家)와 디지털의 결합이다.

안도와 제임스 터렐이 마을 입구의 오랜 절터에 합작해 만든 ‘미나미테라(南寺)’. 이곳은 입장 절차부터 예사롭지 않다. 좌우로 각 8명만 시간을 정해 입장시킨다. 삼나무 건물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벽에 붙어서 움직이다가 간신히 의자에 자리를 잡고 정면을 주시한다. 10분 이상 정면을 응시해야 빛으로 된 형체가 나타난다. 그제야 동공이 열린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빛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밖에는 안도가 설계한 공중 화장실도 있다.

이 밖에 전통 신사의 계단을 광학 유리로 바꿔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도록 한 ‘고오진자(護王神社)’. 일본 전통 정원과 돌다리, 옻칠한 마루방에 일본의 유명 화가가 돌을 갈아 그린 전통화와 소금창고로 쓰던 곳에 아크릴로 그린 현대화를 건 모습이 인상적인 ‘이시바시(石橋)’, 다다미방으로 된 옛 기원의 모습을 재현해 대나무와 동백꽃을 배치하는 등 일본 전통 미학을 보여주는 ‘고카이쇼(碁會所)’, 버려진 치과건물을 각종 잡동사니와 자유의 여신상 등으로 장식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치과’도 있다. ‘긴자’라는 집은 작가가 설계 당시부터 예약을 통해 한 사람이 최대 15분씩만 볼 수 있게 해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I ♥ 湯’


‘I ♥ 湯프로젝트’.목욕과 관련된 온갖 잡동사니를 건물 안팎에 장식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I ♥ 湯프로젝트’.목욕과 관련된 온갖 잡동사니를 건물 안팎에 장식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부둣가에는 실제로 영업을 하는 목욕탕에 일본 전역에서 가져온 목욕과 관련된 온갖 잡동사니를 건물 안팎에 붙이거나 몰아넣은 ‘I ♥ 湯’ 프로젝트가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와 미소를 지으며 각자의 추억을 얘기한다. 여성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목욕탕 바로 앞집에 사는 할머니는 자기 집 현관 쪽에서 사진을 찍으면 목욕탕 전경이 잘 잡힌다며 관람객들을 안내했고, 지금은 보기 힘든 이런저런 목욕 용품에 대한 해설도 곁들였다. 일정에 쫓겨 안에 들어가 목욕을 해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각국의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은 김영자 박사는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와 ‘I ♥ 湯’을 통해 건축가, 작가, 주민이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합쳐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혜주 화정박물관장은 “건축물 하나, 화제작 한 점을 만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수준 높은 미술애호가들이 이런 외딴 섬까지 온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오시마=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사진 출처 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  
#나오시마#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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