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진경시대 회화대전… 정선에서 신윤복까지 100여 산수-풍속화 전시
호암미술관 ‘용 이야기’전… 도자기-불교 유물 등 국보-보물 포함 58점 선보여
백자청화진사채운룡문병
일제강점기 이 땅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반세기가 흘렀다. 그가 세운 국내 최초의 근대적 민간 박물관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13∼27일 열리는 봄 정기전 주제를 ‘간송 50주기 기념 진경시대 회화대전’으로 정했다. 진경시대란, 숙종에서 정조까지 120여 년 이어진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를 일컫는다. 눈 밝은 간송은 ‘한국의 미’를 모색한 진경시대 회화의 가치를 남보다 앞서 헤아려 이 시기 작품을 공들여 수집했다. 지난 41년간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82회 전시 중 진경시대 관련 전시가 20회에 이른 것도 그 덕분이다.
전시에선 우리 산천을 소재로 한 진경화풍을 창안한 겸재 정선부터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산수, 풍속화 등 100여 점과 함께 간송이 남긴 글과 그림 4점을 특별히 선보인다. 봄, 가을로 보름 동안 열리는 정기전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한두 시간 줄서기를 감내해야 하지만 진경시대 회화의 흐름을 찬찬히 되짚어볼 기회다. 무료. 02-762-0442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애호가라면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의 ‘한국 미술 속의 용 이야기전’도 가볼 만한 전시다.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내년 1월 13일까지 마련한 소장품전에선 국보 1점, 보물 2점을 포함해 도자기 불교미술 민속유물 등 용의 다양한 매력을 담은 58점을 전시 중이다. 3000∼4000원. 031-320-1801
○ 진경시대를 찾아서
왼쪽부터 정선의 ‘광진’ 정선의 ‘단발령 망금강’조선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우리 고유색을 표현한 ‘진경시대’의 핵심에는 겸재 정선이 자리한다. 겸재 작품에는 조선의 산천과 집, 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왕산 바위를 짙은 먹으로 표현한 ‘청풍계’, 아차산 풍경을 그대로 담은 ‘광진’은 60대 중반 겸재가 진경화풍을 완성했을 즈음의 작품이다. 한발 더 나아가 72세 때 완성한 ‘단발령 망금강’은 절정의 기량을 드러낸다. 최완수 연구실장은 “흙산은 중국 남방화법의 묵법으로, 암산은 북방화법의 필묘 위주로 표현하는 등 한 화면에 음양 조화와 대비를 살린 작품”이라며 “중국서도 해내지 못한 두 화법의 조화를 이룩한 탁월함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진경화풍과 어린 시절 겸재에게 그림을 배운 심사정이 새로 개척한 조선 남종화풍을 비교 감상하는 일도 전시의 관람 포인트다. 진경산수화풍이 풍미한 시절에 심사정은 명의 남종 문인화풍을 수용해 자신의 산수화풍을 정립했다.
○ 용을 찾아서
왼쪽부터 청화백자 운룡문호, 청화백자 운룡문병, 운룡도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불법을 수호하며, 재액을 물리치는 존재로 상징되는 용. 마침 용의 해를 맞아 12간지 중 유일하게 상상 속 동물을 주제로 삼은 호암의 전시는 궁중부터 민간까지 생활 속에서 용의 이미지가 얼마나 깊이 깃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친근한 용 이미지와 더불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용과 이무기의 중간단계로 수염과 뿔이 없는 반룡, 물고기 형태의 어룡 등이 회화 도자기 목가구 등에서 등장한다. 용의 아홉 아들 중 소리내기 좋아하는 ‘포뢰’가 범종에, 살생을 좋아하는 ‘애자’가 칼자루에 등장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국보 215호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의 경우 관객이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 용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고미술 컬렉션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두 사립미술관의 전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수집가의 이해와 열정을 세상과 나누는 자리다. 전시에서 전통에 대한 안목을 한 뼘 넓힌 뒤 바깥을 즐길 차례다. 간송의 작고 소박한 마당에서, 호암의 격식 갖춘 드넓은 정원에서 기품 있는 공작새와 모란꽃이 한껏 어우러진 봄날을 누리는 것은 눈과 마음의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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