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원작을 한국적 몸짓과 선율의 음악극으로 풀어낸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이 4월 30일 한국 연극 최초로 셰익스피어 연극의 원형질을 간직한 글로브 극장 무대에섰다. 공연이 있던 날 4월 한 달 내내 내리던 비가 멈췄고 1300여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극단 여행자 제공
거짓말처럼 날이 갰다. 한 달 사이 100mm가 넘는 비가 내려 ‘영국 역사상 가장 축축한 4월’이라는 말이 신문에 등장했고 영국 남부에는 홍수주의보까지 흘러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런 4월의 마지막 날,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양정웅 개작·연출)이 셰익스피어 연극의 둥지라 할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됐다. 이 극장에서 한국 연극은 처음이다. 이 공연은 7월 27일 개막할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문화올림피아드 행사의 하나로 기획된 ‘글로브 투 글로브’ 페스티벌 초청으로 열렸다.
글로브 극장에서 지붕 없는 1층 무대 주변 관객 최대 700명은 비가 오면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공연을 봐야 한다. 거의 매일 비가 내리던 런던 날씨는 30일 아침부터 눈부시게 반짝이더니 오후 7시 반 공연까지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2막 공연이 끝날 무렵에서야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지만) 덕분에 페스티벌 개막 이후 8편의 공연 중 가장 많은 1300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객의 반응도 가장 뜨거웠다. 장면을 간단히 안내하는 자막 서비스만 제공하기 때문에 다른 공연에는 해당 언어권 관객이 더 많았다. 이날 공연에선 서양 관객의 비중이 80%는 되어 보였다. 관객들은 요정 대신에 한국의 도깨비를 등장시킨 한바탕 난장을 콘서트 현장처럼 웃고 즐겼다.
한국의 해학적 연희술로 무장한 배우들은 1층에 솟아있는 무대는 물론이고 무대 바로 앞에 서서 관람하는 500명가량의 관객 사이로 뛰어들어 헤집고 나서며 역동적 연기를 펼쳤다. 간간이 섞은 영어대사에 폭소가 터졌고 항(김진곤) 벽(남승혜) 루(장현석) 익(김은희) 네 남녀가 얽히고설킨 감정을 태껸과 한국적 춤사위로 코믹하게 풀어내는 장면에선 탄성과 힘찬 갈채가 터져 나왔다.
알렉스 황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페스티벌 참가작 중 가장 과감한 작품이었다. 그리스 국립극단의 ‘페리클레스’, 중국 국가화극원의 ‘리처드 3세’와 비교해도 관객과의 교감이 일품이다. 노천극장인 글로브 극장과 가장 어울린다”고 말했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원작의 장난꾸러기 요정들을 한국의 도깨비로 바꿔 해학적으로 풀었다. 극단 여행자 제공2006년 런던 바비칸센터 무대에도 섰던 우두머리 도깨비 가비 역 정해균 씨는 “지금까지 이렇게 관객이 가깝게 다가서는 무대는 없었다. 코앞에서 턱을 괴고 관람하는 관객과 눈을 맞추면서 공연하다 보니 무아지경에 빠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연출가 양정웅 씨도 “셰익스피어의 영혼과 심장이 깃든 극장에서 영국 관객과 이렇게 행복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니 꿈만 같다”고 말했다.
이 페스티벌은 세계 37개 언어로 제작한 셰익스피어 연극 37편을 초청했다. 37이란 숫자는 진위 논란이 있어온 ‘두 귀족 친척’을 빼고 셰익스피어가 남긴 희곡 편수다. 리투아니아 네크로수스의 ‘햄릿’ 등 쟁쟁한 작품은 물론이고 뉴질랜드 마오리어 공연(‘트로일러스 앤드 크레시다’), 남수단의 주바 아랍어 공연(‘심벌린’)에 수화공연(‘사랑의 헛소동’)까지 포함됐다. 1일 한 차례 공연을 남긴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지난 10년간 24개국에서 공연을 펼쳐왔다. ::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을 당시인 1599년 지어져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을 공연했던 극장(3000명 수용)을 1997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극장. 3층으로 된 목조 구조물이다. 둥그렇게 뚫린 천장으로는 하늘이 쏙 들어온다. 1616년 런던 대화재 이후 초가지붕이 허용된 런던 유일의 건물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시대처럼 무대세트나 조명, 특수효과 없이 배우의 연기로만 승부를 걸어야 한다. 1층 무대 주변의 입석(700명)과 그 뒤 지붕 아래 객석(800명)에 최대 1500명의 관객을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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