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이주동 교수 “카프카의 창작과정, 인간적 매력… 사실적으로 복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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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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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평전’ 펴낸 이주동 교수

이주동 교수 제공
이주동 교수 제공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말년에 연인 도라 디아만트와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둘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한 어린 소녀가 인형을 잃어버렸다며 울고 있었다. 카프카는 바로 이야기를 꾸며냈다. 그 인형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인형은 지금 여행 중이라고. 소녀의 슬픔은 점차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이후 3주 동안 카프카는 인형으로 위장해 매일같이 소녀에게 편지를 썼다. 글을 쓰며 생의 의지를 다져온 그가 소녀를 달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난해 퇴임한 이주동 서강대 명예교수(66·독어독문학·사진)가 ‘카프카 평전’(소나무)을 펴냈다. 카프카의 어린 시절부터 보험공사 재직 시절, 사랑했던 여인들과의 일화, 글쓰기에 얽힌 이야기, 첫 성경험과 자살 충동, 그리고 결핵으로 숨지기까지의 생애를 872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담았다. ‘변신’ ‘성’ ‘소송’ 등 카프카 주요 작품의 창작 과정과 해설도 실었다.

이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카프카가 ‘문학이란 거짓 없는 거짓을 말함으로써 그 무엇보다도 깊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했듯이 인형을 잃어버린 소녀의 상처를 거짓 편지로 달랜 인간적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카프카 전집’(솔출판사) 1∼3권을 번역하고 2000∼2001년 한국카프카학회장을 지내는 등 카프카 작품 연구에 몰두해왔다. 카프카는 생전에 50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대부분 짧은 산문이나 단편, 평론 등이어서 다 합쳐도 438쪽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카프카가 남긴 일기와 편지, 미완성 유고와 카프카가 일했던 보험공사의 공무 증명 기록,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을 바탕으로 카프카 인생의 다양한 흔적을 최대한 복원했다. 세 차례에 걸쳐 카프카가 살았던 체코 프라하를 비롯해 그가 여행하고 요양했던 지역, 카프카 조상들의 고향까지 답사했다.

이 과정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푼 카프카의 인간적 매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카프카는 보험공사의 관리였지만 산업재해를 당해 곤란해진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몰래 변호사 비용을 대주거나 소송에서 이길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어요. 직업상으로는 모순적인 행동이지만 그는 이 차가운 세계를 따뜻하게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전 세계에 카프카 평전이 여럿 나왔지만 독일어권 연구자가 아닌 한국인 교수가 평전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독문학자의 길을 카프카와 함께 걸어온 이 교수는 “카프카가 문학을 통해 개인적 고통을 ‘20세기 전후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보편적 고통’으로 승화한 점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카프카는 당시 체코에서 소수민족이었던 유대인이었고 아버지와도 갈등을 빚었으며 주입식 교육과 관료주의적 정치가 가져온 규율과 억압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등 실존주의 철학자와 작가들도 카프카 작품의 영향으로 실존주의 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은퇴했지만 카프카와 독문학을 향한 그의 사랑은 아직 식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카프카의 모든 작품을 학술적으로 파고들어 해설서를 쓸 계획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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