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불어라, 선거열풍”… 가요계 ” ‘응원가’ 출전준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4일 03시 00분


4월 11일 총선, 7월 27일 올림픽, 12월 19일 대선…
정치-스포츠의 해, 2012년 문화계 생존 전략은…

《 온라인서점 예스24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한국이 4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가 열린 2시간 동안 도서주문량은 단 54권. 월드컵 이전 비슷한 시간 분당 평균 20여 권의 책이 팔리던 것에 비하면 판매량이 4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반면 월드컵 기간인 2002년 6월 28일 국내 개봉한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200만 명 이상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배급사인 월트디즈니는 월드컵이 열리면 스포츠 지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에 대비해 해당 지면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해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
대형 스포츠 행사인 월드컵, 올림픽이나 정치적 중대사인 대선, 총선은 문화산업에 깊고도 큰 영향을 미친다. 대중의 관심을 빼앗는 악재가 되기 쉽지만 대중이 대거 모이는 기회를 잘 활용하면 호재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총선(4월 11일)과 대선(12월 19일), 그리고 런던 올림픽(7월 27일∼8월 12일)까지 몰려 있다. 영화, 출판, 공연, 가요 등 문화계 각 분야가 긴장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 출판·가요계 “선거는 호재”

출판계에서 올림픽은 악재로 보지만 선거는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관련 책들이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후보의 자전 에세이 ‘신화는 없다’가 출간 12년 만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대통령의 당선 직후에는 그가 애독한 것으로 알려진 책들의 판매도 늘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예스24와 인터파크도서 등은 관련 책을 모아 기획전을 열었다. 올해 초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저서가 출간될 예정이어서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영사는 2010년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와 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을 예상하고 5월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출간해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말부터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선거 관련 책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닥치고 정치’를 비롯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쓴 ‘문재인의 운명’ 등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대선을 앞두고 독자의 관심이 미리 반영된 결과로 출판계는 보고 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대중들은 책을 통해 정치를 어떻게 읽을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판단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밴드 음악계도 ‘특수’를 노리고 있다. 이창희 미러볼뮤직 대표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YB와 트랜스픽션 등의 밴드 음악이 응원가로 큰 인기를 얻었다. 멜로디가 쉽고 열정적인 펑크록 계열에서 ‘출전 준비’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트로트계에서도 ‘선거운동송’ ‘응원송’을 노리며 잘 각인되는 후렴구를 실은 노래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런던 올림픽과 부대 행사들은 유럽에 진출하는 케이팝(K-pop) 가수들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현지 한국문화원들이 여러 이벤트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영화계 “이벤트로 올림픽 넘자”


영화계는 선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올림픽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화의 주 관객층인 20, 30대 여성 중 스포츠에 열광하는 층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과 2010년 월드컵 당시 성공을 거뒀던 ‘극장에서 경기 보고 영화 보기’ 등 다양한 이벤트로 악재를 극복할 계획이다. 박태환 선수의 수영 경기 등 주요 경기 장면을 극장에서 유료로 관람하는 상품도 계획하고 있다.

극장 체인 CGV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한국 경기 등 6개 경기를 유료로 상영했다. 한국과 우루과이의 16강 경기는 객석점유율이 91%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배급사 뉴는 초능력을 가진 점쟁이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 ‘점쟁이들’의 8월 개봉에 맞춰 각 지역 유명 점쟁이들을 모아 올림픽 결과를 맞히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올림픽 기간이 영화의 최대 성수기와 겹치지만 예정된 영화의 개봉을 늦추는 등의 극약처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인 CJ E&M 측은 “(자사가 투자한 영화 가운데) 올해 가장 많은 13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타워’를 올림픽 기간에 개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소재로 한 ‘타워’는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등 톱스타가 출연한다.

최근 몇 년 새 활황세인 공연계도 올해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정호 빈체로 차장은 “올림픽이 열리는 7월엔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외에는 큰 규모의 내한공연이 없다. 6월로 큰 공연을 당기는 경우도 적잖다”고 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평소라면 문화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만한 2∼3년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공연 유치에 소극적인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고희경 디큐브아트센터 극장장은 “뮤지컬계에서는 검증된 작품 위주로 라인업을 짜는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미술관은 선거나 스포츠 바람을 덜 타는 편이어서 특별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지는 않는 분위기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일본국립민족학박물관과 공동으로 일본의 현대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 기획전을,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일 국보급 문화재 교류전’ 등을 열어 스포츠 이벤트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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