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불이 켜질때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주현 씨 ‘회로에서’

얇은 전선이 둘로, 둘은 넷으로 증식을 거듭하더니 454개 가닥으로 확산된다. 꽃잎처럼 활짝 펼쳐진 전선 가닥의 끝엔 피복이 벗겨진 상태로 깨알만 한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달려 있다. 전선에서 뻗은 촉수가 바닥의 금속판과 만나는 순간 반딧불이 떼처럼 일제히 작은 전구들이 환한 불을 밝힌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12월 20일까지 열리는 김주현 씨의 ‘회로에서’전에 나온 설치작품(사진)은 1차적 산업재료를 이용해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어떻게든 세상과 접속하고 싶은 인간의 절실한 마음을 +―전극의 만남을 통해 깨우쳐준 작업이다.

종이, 경첩, 철재, 목재로 유기적 형태와 구조를 만들어온 김 씨는 조립 해체가 가능한 유연한 작품으로 ‘상호관계성’을 탐구한다. ‘회로에서’ ‘기억의 노선’ 등 신작에 대해 그는 “전기가 흐르는 것만큼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불이 들어오는 작업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전시장에선 설치작품과 더불어 그 설계도면 격인 드로잉을 선보여 제작과정을 꼼꼼히 엿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뚜렷한 질서에 자유분방한 운율이 스며들고, 단순한 규칙 속에 복잡한 실체를 드러내 보인다. 순열조합, 복잡계 이론 등 수학, 과학 이론과 맞물려 있으면서 비움으로 채움을 일깨우는 점에서 사유적이다. 창조적 예술정신과 과학적 질서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빚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02-549-303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