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느낌이 다른 악역, 그래서 ‘수양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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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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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 역 김영철. KBS 제공
KBS2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 역 김영철. KBS 제공
최근 방송 3사는 미니시리즈 사극 풍년이다.

KBS2 ‘공주의 남자’(이하 ‘공남’), MBC ‘계백’, SBS ‘무사 백동수’가 매주 안방 시청자를 찾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공남’은 시청률 23%를 훌쩍 넘기며 월요일부터 목요일 오후 10시 황금시간대에 미니시리즈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공남’은 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수양대군 첫째 딸 세령과 정적 김종서 막내아들 김승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표방하나 전문가들은 ‘공남’의 독주 일등공신으로 김영철(58)이 연기한 수양대군을 꼽고 있다.

인터넷에선 그를 ‘수양느님(수양+하느님)’이라고 부른다. ‘공남’의 한 장면에 김영철이 반짝이 의상을 입고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한 모습을 합성한 패러디 영상도 화제다.

최근 사극에서는 캐릭터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선덕여왕’ 이후 주인공이 악의 세력을 하나씩 해치우면서 성장하는 ‘미션 클리어’ 형식을 띤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을 자극하는 악역의 중요성도 커졌다. ‘선덕여왕’의 멘토형 악역 미실(고현정)이 그랬고, ‘추노’의 냉혈한 좌상(김응수)이 그랬다.

안방을 사로잡은 그 남자, ‘공남’의 수양대군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욕망의 결정체’ 현대인 수양

현대인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 ‘공남’의 수양대군은 순수한 자기 욕망으로 왕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기생집에 들러붙어 사는 시정잡배를 모아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김종서를 만나려 “당신 아들이 궁녀와 사귄다”고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왕과 비’(임동진), ‘한명회’(서인석), ‘파천무’(유동근) 등 수양대군을 다룬 드라마는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단종 폐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신권과 왕권의 대립 속에서 고뇌를 거듭하다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요즘 시청자에겐 대의명분이 먹히지 않는다. 솔직한 이유를 꺼내야 공감을 산다”라며 “‘공남’의 수양대군은 정권을 뺏으면서도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딸 바보’ 수양

피로 물든 왕좌에 앉으면서도 수양은 자식들에겐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종친의 설움을 너희들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댄다. 사랑하는 딸 세령(문채원)이 김승유(박시후)와의 사랑에 눈멀어 아비인 자신을 냉대할 때마다 속으로만 앓으며 돌아선다.

안혁모 iHQ연기아카데미 본부장은 “서슬 퍼런 수양도 딸에게 진다. ‘하얀거탑’의 김명민처럼 인간적인 면모가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며 “부성애, 출세욕 등 남자로서의 욕심이 어우러져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의 ‘악역 아우라’

김영철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 두목이었다. KBS1 대하사극 ‘태조 왕건’에선 측은하면서도 엽기적인 궁예를 연기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야누스적인 수양대군 역에 숨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정덕현 씨는 “악역 아우라가 있는 배우”라며 “그가 하면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연기자와 캐릭터, 대본, 역사가 버무려져 기막힌 비빔밥 같다는 평도 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계유정난, 단종 복위 운동 등 거대담론에 자식세대의 절절한 로맨스까지 가미돼 세련된 사극이 나왔다는 것.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는 “‘계백’은 영웅서사에 머물러 답답한 병정놀이를 하고, ‘무사 백동수’는 암살단 흑사초롱 등 생소한 기록에 치우쳐 지나치게 퓨전적”이라고 ‘공남’의 독주 이유를 설명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이슬비 동아닷컴 기자 misty8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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