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자 수녀 “제국주의 물든 천주교 포교 과감히 비판”

  • 동아일보

종교 역사소설 ‘파격’ 펴낸 철학박사 임금자 수녀

종교역사 소설 ‘파격’을 쓴 임금자 수녀. 19세기 신분제도 철폐와 천주교 전파에 나섰던 진보적 인사들의 고뇌와 역경을 작품 속에 담았다. 동아일보DB
종교역사 소설 ‘파격’을 쓴 임금자 수녀. 19세기 신분제도 철폐와 천주교 전파에 나섰던 진보적 인사들의 고뇌와 역경을 작품 속에 담았다. 동아일보DB
“그리스도교가 동양에 전래되는 과정에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 비극적인 전래사를 비판적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종교역사 소설 ‘파격(破格)’을 다섯수레 출판사에서 펴낸 임금자 작가(69). 그는 가톨릭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소속 수녀다. 대만 푸런(輔仁)대에서 중국철학을 연구한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소설은 1834년부터 1847년까지를 배경으로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벽을 허물려던 진보적 인사들과 목숨 걸고 천주교 전파에 나섰던 신자들의 얘기를 담았다. 제목의 ‘파격’은 ‘신분제도를 깬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까지 19세기 천주교 개척사를 다룬 종교 소설은 순교자적 이미지를 주로 강조해 다양한 역사, 종교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반면 ‘파격’에는 서양의 포교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김대건, 최양업 신부 등 조선 천주교 개척자들의 종교적 고뇌가 드러난다.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저자는 식상한 호교론(護敎論)을 거부하고, 동양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소설 속에서 프랑스 함대 에리곤호에 승선해 세실 제독의 통역을 맡았던 김대건 신부는 아편전쟁과 난징조약을 목도한 뒤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는 줄 아는가? 썩은 시체들과 파괴된 집들이지. 그런데 나는 양놈들과 한패가 되어 썩어가는 시체들을 구경하고 다녔지. 그 양놈들은 실은 천주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지. 그런데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 걸까?”

최양업 신부가 “청국이나 조선도 많은 천주교 신자를 잡아 죽였지 않나”라고 반문하자 김 신부가 되받는다. “그들은 천주님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런데 양인들은 천주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에 올리고 있지 않나?”

임 수녀는 “그리스도교의 초기 포교는 순수했지만 19세기 동양에 전파될 때는 서양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변질됐다. 결국 아편을 필두로 포교가 이뤄진 셈”이라고 말했다.

작품은 조정의 명을 받고 청에서 신문물을 배우는 역관 김재연, 몰락한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 상하이(上海)에서 거상(巨商)으로 성장하는 정시윤, 기녀였다가 천주교 포교를 위해 투신하는 초선 등의 인물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투영한다. 이들은 ‘신분제도 철폐는 시대적 대세’라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이 천주교 수용인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나타내며 작품의 긴장감을 높인다.

임 수녀는 2002년 중국 공산당 혁명을 다룬 소설 ‘중국이여, 중국이여’를 냈고, ‘파격’은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2007년 미국에서 노자, 장자의 사상을 연구한 철학서 ‘도(道)-인간 안의 무한자’를 내기도 했다.

그는 “‘중국 천주교사’라는 학술서로 내려다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소설로 풀게 됐다”며 “철학을 실제 삶으로 구현한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대원군과 일제강점기를 다룬 역사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