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惡이 판치는 이곳, 끝까지 널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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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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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가면의 룰/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양윤옥 옮김/392쪽·1만3000원·자음과모음

일본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씨. 자음과모음 제공(오른쪽)
일본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씨. 자음과모음 제공(오른쪽)
절대 악(惡)의 집안에서 자라난 후미히로. 그는 군수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그룹에서 계획에 의해 악을 행할 인물로 태어나지만 그 운명을 거부한다. 너무도 사랑하는 여성 ‘가오리’를 만났기 때문. 그는 가오리를 범하려는 아버지를 죽인다. 가오리는 후미히로의 얼굴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던 그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한다. 결국 후미히로는 가오리를 떠나지만 내내 잊지 못한다.

‘흙 속의 아이’(아쿠타가와상) ‘차광’(노마문예상) ‘쓰리’(오에겐자부로상) 등을 선보이며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가는 이번에도 그동안 천착해온 ‘악’을 다시 얘기한다.

후미히로의 둘째 형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수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현재의 악’이다. “전쟁은 비즈니스야. 어떤 전쟁이든 이권이 개입돼 있어”라고 말하는 둘째 형은 몇 년 뒤 일본의 전쟁 위기를 일으켜 군수사업의 호황을 불러올 계획을 짠다. 후미히로는 다시 둘째 형과 맞선다.

악과의 싸움을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탐색전이나 복수극은 이야기의 곁가지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번다는 군수산업의 메커니즘은 이미 ‘상식’인 데다 아버지나 둘째 형이 냉정하게 보면 비정상적인 인물에 가까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되레 작품은 순애보적인 연애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유년 때 만난 후미히로와 가오리는 뜻하지 않게 이별하지만, 후미히로는 그녀의 뒤를 내내 보살피며 안위를 걱정한다. 특히 얼굴을 바꿔 전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후미히로가 호스티스 일을 하는 가오리를 찾아가 뒤늦게 상봉하는 장면은 가슴 찡하다.

“순수 문학을 지향하지만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다수의 탐정, 사회전복세력인 ‘JL’ 멤버들, 그리고 형사까지 등장시킨다. 탐색과 추격전은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복잡한 점이 흠. 갑자기 모두 행복해지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해피엔딩도 인상적인 여운을 남기기에는 부족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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