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이 오페라와 뮤지컬에 동반 출연한다. 오페라 속의 딸은 남자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압박하고 뮤지컬 속의 딸은 실제 아버지 앞에서 가슴을 드러낸다. ‘딸 바보’ 소리가 싫지 않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걸으며 효심이 더 돈독해져가는 딸을 함께 만났다.》 ●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서도 부녀역 맡은 김관동 - 지현 씨 사랑의 힘으로 아버지 움직인 딸
“결혼을 허락해 달라”며 아버지에게 떼를 쓰는 내용의 아리아 ‘사랑하는 아버지여’를 아버지 김관동 연세대 교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른 딸 지현 씨는 노래가 끝나자 아버지를 껴안고 환하게 웃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사랑하는 아버지여, 그이는 잘생겼어요. 함께 반지를 사러 갈 거예요. 허락을 안 해주시면 강물에 몸을 던질 거예요….”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아리아 ‘사랑하는 아버지여’다. 성악가인 딸이 실제의 아버지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 무대가 펼쳐진다. 7월 6∼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잔니 스키키’. 바리톤 김관동 연세대 교수(59)는 꾀 많은 아버지인 ‘잔니’로, 딸인 소프라노 지현 씨(28)는 사랑에 눈먼 딸 ‘라우레타’로 출연한다. 현실과 무대를 오가며 부녀지간인 두 사람을 27일 만났다.
“가사에 전해지는 느낌이 아무래도 남다르지요. 하지만 우선 연기자 본분에 충실하려고 해요. 무대에선 딸로 보기보다는 ‘상대역인 소프라노’라고 자기암시를 하죠.”(김 교수)
“다른 선생님들과 무대에 설 때보다 의지가 되고 편안하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아요.”(지현 씨)
두 사람은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의 제안으로 출연하게 됐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는데 제가 시니어이다 보니까 ‘언제 또 딸과 무대에 서겠나’란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는 게 김 교수의 말. 두 사람은 2005년 ‘마술피리’에서 주역인 ‘파파게노’와 단역인 ‘동자’로 한무대에 선 일이 있지만 나란히 주역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잔니 스키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사는 부자(富者)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의 유산을 둘러싼 친척들의 다툼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 라우레타가 연인과의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아버지를 압박하는 아리아 ‘사랑하는 아버지여’가 유명하다. 실제는 어떨까.
“남자친구를 아버지께 소개해 드린 적도 없는 걸요. 그렇게까지 깊이 사귄 남자친구도 아직 없어요.” 딸은 아버지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지인들에게서 “공연을 꼭 보러 가겠다”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는 부녀는 연습에도 열심이다. 연습실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 장면 한번 해보자”며 생각날 때마다 노래와 동선을 맞춰본다고. 이들은 연세대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로 지내기도 했다. 사실 아버지는 딸이 성악하는 것을 반대했단다.
“성악은 사람이 ‘하나의 악기’가 돼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죠. 아내(소프라노 석금숙 씨)도 성악을 하는데 외동딸까지 음악을 시키기는 싫었어요. 하지만 자식 고집을 꺾을 수 있습니까.”
지현 씨는 연세대 성악과, 미국 신시내티대 음대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 음대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훌쩍 자란 딸은 이제 아버지에게 배려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고음 처리를 할 때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빨개지면 혈압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는 것.
“딸이 이번 연습 중에 저에게 ‘어떤 사람은 파워풀하게 하는데 아버지는 연륜이 느껴진다’고 하데요. 이제 제 소리에 힘이 떨어졌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며 응원해준 것이지요. 가슴 짠하기도 했습니다. 어, 이거 딸 앞에서 처음 말하는 건데….”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송영창 - 상은 씨 강심장 딸에 갈채보낸 아버지
사춘기 청소년들을 그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출연 중인 송영창 송상은 부녀. 딸은 “아버지가 정말 잘해 주셔서 사춘기 방황 없이 자랐다”고 했고 아버지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외동딸 자랑에 연방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외모만 보고도 부녀 사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토니상 8관왕에 빛나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함께 출연 중인 송영창(53) 송상은 씨(20)다.
이 라이선스 뮤지컬은 19세기 독일을 무대로 교조적인 기성세대에 구속되고 억압된 10대 청소년들의 울분을 표출한 작품. 아버지는 국내 초연(2009년)에 이어 이번 재연무대에서도 성인남자 역을 맡았다. 딸은 그 성인들에게 희생당하는 청순한 여주인공 벤들라 역을 맡아 이번 무대에서 처음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연기과 3학년 휴학 중)인 그는 지난해 6인조 록그룹 ‘못 노는 애들’의 리드싱어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동상을 수상했다. KT의 ‘두 두 두 올레(do do do olleh)’ 캠페인 CM송 목소리로 친숙한 만능재주꾼이기도 하다.
두 부녀의 ‘스프링 어웨이크닝’ 동반출연은 공연계에서 작은 화제가 됐다. 성에 눈뜨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1막 마지막과 2막 첫 장면에서 벤들라의 가슴이 노출된다.
“상은이가 오디션에 최종 합격하자 아내(성우 유남희)도 ‘당신이 빠져’라고 했어요. 저도 빠질까 생각했지만 흥행 부진 속에서 6개월간 초연무대를 지켜온 제가 작품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행했어요.”
“초연 때 작품을 보고 홀딱 반해서 오디션에 응시해 덜컥 뽑혔는데 아버지도 출연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노심초사했죠. 하지만 막상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부끄럽고 어색한 게 없어졌어요.”
연기자로 대선배인 아버지는 “내 데뷔작이 1986년 TV드라마와 영화로 동시 제작됐던 ‘비극은 없다’였는데 거기서도 홀딱 벗고 정사신을 했다”면서 “상은이가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고 ‘아, 진짜 연기자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외모는 똑 닮았지만 두 사람의 연기 스타일은 정반대다. 아버지는 지금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하고 무대 위에서 전력을 다해 파김치가 돼야 만족하는 완벽주의자다. 딸은 연기 베테랑인 아버지도 아직 올라가 보지 못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벌써 두 차례나 올랐는데 한 번도 떤 적 없다는 낙천주의자다.
딸은 아버지가 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못 봐서 스크린에서 비열한 악역을 주로 맡은 아버지의 모습이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상은이는 후자”라고 말했다.
이 부녀의 꿈은 언젠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함께 출연하는 것. 1998년 아버지가 이 뮤지컬에 출연했을 때 일곱 살이던 딸이 작품에 폭 빠져서 전체 노래는 물론이고 대사까지 다 외웠는데 지금까지 다 외우고 있단다. 너무 닮았지만 또 너무도 다른 부녀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속 배역의 이미지와 180도 달랐다. 그래서 천생 배우인가 보다.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3만∼6만 원. 02-744-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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