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영국 바닷가에서 사고를 당한 중국인 노동자들의 죽음을 소재로 만든 아이작 줄리언 씨의 3채널 영상작품.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2004년 영국의 해안가 갯벌에서 새조개를 채취하던 중국 출신 불법 이민 노동자 23명이 바닷물에 휩쓸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만조시간을 잘 몰랐던 탓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영국 출생 작가 아이작 줄리언 씨(51)는 당시 참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4년여 공들인 작업 끝에 이 사건을 중심에 두고 중국의 전설과, 1930년대 상하이의 분위기를 되살린 리메이크 영화 등 3개의 이야기를 접목한 55분 길이의 영상설치작품 ‘Ten Thousand Waves’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시드니 비엔날레에 처음 공개되면서 호평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는 올해 첫 기획전으로 7월 17일까지 이 작품을 상영 중이다. 원래 9개 채널용으로 제작됐지만 작가가 전시공간에 맞춰 3개 채널용으로 선보였다. 별다른 줄거리는 없지만 사고 당시 화면 등 흑백 다큐와 극영화를 매끄럽게 이어가면서 글로벌한 경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통해 중국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
실재와 허구를 오가며 세련된 영상미와 정교한 사운드로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낸 솜씨가 녹록지 않다. 동일한 이미지가 두세 개로 증식되고, 스크린마다 다른 이미지가 펼쳐지는 등 독특한 몽타주 기법은 관객에게 일반 영화와 다른 감상 체험을 제공한다. 세계적 여배우 장만위가 조난당한 선원을 이끌어주는 바다의 여신 마주로 출연해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영상속에 흐르는 중국 시인 왕핑의 시도 찬찬히 음미하길 권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3명 노동자의 죽음을 기리며 쓴 작품이다. 02-544-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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