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반기 서울에 대극장 5곳 개관… 엇갈린 공연계 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9일 03시 00분


무대숨통… 뮤지컬계
상업화 걱정… 연극계


《올해 하반기 서울에 객석 1000석 안팎의 대형 공연장 5곳이 개관한다. 2009년 500석 안팎의 중극장 3곳이 생기며 미들급 극장이 늘어난 데 이어 이번엔 헤비급 극장이 대거 확충되는 셈이다. 공연장 부족을 호소하던 뮤지컬계는 반색하고 있지만 소극장 대관료도 대기 힘들어 하는 연극계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공연 시장의 상업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 극장 대형화가 공연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 극장 대형화는 시장 확대의 결과

대형 극장이 잇달아 개관을 앞두면서 이 공연장들을 채울 콘텐츠가 있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 하반기 개관하는 극장 중 가장 큰 규모인 인터파크의 블루스퀘어 극장은 뮤지컬 전용관 개관작으로 국내 초연작인 라이선스 뮤지컬 ‘조로’를 선택했다. 인터파크 제공
대형 극장이 잇달아 개관을 앞두면서 이 공연장들을 채울 콘텐츠가 있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 하반기 개관하는 극장 중 가장 큰 규모인 인터파크의 블루스퀘어 극장은 뮤지컬 전용관 개관작으로 국내 초연작인 라이선스 뮤지컬 ‘조로’를 선택했다. 인터파크 제공
올해 개관을 앞둔 대극장 5곳 중 3곳은 기업이 짓는 것으로 모두 뮤지컬 전용관이다. 국내 뮤지컬 전용관은 잠실 샤롯데씨어터(1154석)뿐이었는데 4개로 늘어나는 셈이다. 새로 개관하는 극장 중 최대 규모는 인터파크가 한남동에 건설 중인 블루스퀘어로 1600석짜리 뮤지컬 전용관이다.

기업의 극장이 모두 뮤지컬 전용관인 것은 극장 대형화 추세의 바탕에 자본의 논리가 깔려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공연예술 중 뮤지컬은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장르다. 2000년 이전까지 매출 규모가 1000억 원도 안 되던 공연 시장은 2001년 초연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흥행신화를 쓰면서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불과 8년 만에 2000억 원대로 두 배로 성장했다. 성장 속도가 빠른 국내 뮤지컬 시장에 돈이 몰리고 이에 걸맞은 하드웨어가 뒤따르는 것은 시장 논리상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분석이 나온다.

○ 공연장 대형화가 수익률 높여줄까

문제는 이미 콘텐츠의 공급이 수요보다 넘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규모가 두 배가 넘는 일본보다 오히려 연간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 작품 수는 다섯 배 많다는 분석도 있다. ‘돈이 된다’고 하니 앞다퉈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웬만한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은 대부분 국내에 소개됐고 창작뮤지컬은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장이 커지고 늘면 감당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개관하는 3개 뮤지컬 전용극장 중 개막작으로 초연작을 올리는 곳은 블루스퀘어(조로) 한 곳뿐이다.

하지만 뮤지컬 전용극장이 느는 것이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뮤지컬 제작사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2009년 이후 국내 뮤지컬 시장의 위축은 3개월 이상 장기공연할 공연장이 부족해 짧게 치고 빠지는 단기 공연만 늘었기 때문”이라며 “전용관에서 장기 공연이 이뤄지면 작품 수가 줄면서 수익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반면 상업 공연물과의 경쟁에 밀려 위축된 대학로 연극계는 대형 극장의 출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연극협회 박장렬 회장은 “연극과는 시장이 달라 크게 상관은 없지만 공연계 전체의 상업화 추세가 더 심화되는 현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소극장을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연극은 상업 공연들과 콘텐츠 싸움에서도, 편의성을 극대화한 시설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장 대형화 추세가 공연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시장이 커지면 그만큼 잠재 고객도 개발되고 극장 규모가 다양해진 만큼 질 좋고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된다는 것.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은 “무대 예술의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인 김종석 용인대 교수도 “공연 제작자 입장에선 공연장이 늘어난 만큼 작품을 올릴 기회도 늘어난다”며 “영국 런던에 글로브극장이 없었다면 셰익스피어 연극이 지금처럼 유명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선진 공연시장 시스템 정착으로 가야

왼쪽부터 디큐브아트센터가 들어설 건물 디큐브시티, 인터파크가 짓는 블루스퀘어, CJ엔터테인먼트가 짓는 CJ아트센터 조감도. 디큐브시티·인터파크·CJ E&M 제공
왼쪽부터 디큐브아트센터가 들어설 건물 디큐브시티, 인터파크가 짓는 블루스퀘어, CJ엔터테인먼트가 짓는 CJ아트센터 조감도. 디큐브시티·인터파크·CJ E&M 제공
국내 공연 시장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그려보자면 공연물의 ‘급’에 따라 브로드웨이, 오프브로드웨이, 오프오프브로드웨이로 나뉘고 이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다양한 공연이 생산되고 검증을 거쳐 큰 무대에 서게 되는 미국의 브로드웨이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는 것. 극장 규모가 다양해진 만큼 대학로 소극장은 실험적이고 다양한 창작품을 생산하고 여기에서 검증된 작품들이 더 큰 무대로 진출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창작의 근원인 소극장들이 도태돼 버리면 대극장에선 결국 해외에서 수입하는 흥행작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극장 운영이 실패하면 그 여파가 공연계 전체에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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