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 “옛날엔 설움 받으며 노래했는데 요즘엔 사랑 받는다 느껴지네요”

  • 동아일보

내달 8일 디너쇼 갖는 가수 심수봉

사진 촬영 전 화분에 시든 잎사귀 하나까지 매만질 정도로 심수봉은 섬세하다. 그는 “음악으로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사진 촬영 전 화분에 시든 잎사귀 하나까지 매만질 정도로 심수봉은 섬세하다. 그는 “음악으로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금 활동하는 가수들을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가수를 하대하지도 않고 가창력을 마음껏 표출할 수도 있잖아요. 난 무지 설움당했는데….”

뜨거운 커피가 든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가수 심수봉(56)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버이날 디너쇼를 앞두고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노래 잘하는 가수가 환영받고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가수를 찾는 요즘, 새삼 사랑받는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때 그 사람’ ‘백만 송이 장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히트곡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가 ‘새삼’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짧은 활동기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제가 정상적으로 활동한 건 6개월이 좀 넘어요. 1979년 2월 정식 음반을 내 히트를 했지만 그 후 큰 사건이 터지면서 제정신도 아니었거든요.”

그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현장에 있었고, 이후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다. 5년이 지난 1984년 ‘무궁화’를 발표했지만 이때도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방송윤리위원회(심의)는 다 통과했는데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독재 정권 타도 움직임을 선동하는 걸로 오해를 받았던 것 같아요.”

심수봉의 음악은 서정적 가사와 물기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는 “평균에서 벗어났던 스스로의 삶에 대한 연민이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과 만나면서 음악에 깊이가 생긴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가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느꼈던 건 2002년부터 2년간 미국에서 지낼 때였다. 당시 딸의 교육을 위해 미국에 머무는 동안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자 큰아버지인 고 심상건의 가야금 연주 음반을 내내 들었다. “국악이 뭐 대단한가 싶었어요. 그런데 그 휘청휘청하면서 여러 음을 한 번에 내는 음색, 드럼으로 쫓아갈 수 없는 당김음에 무릎을 쳤죠.” 자신의 음악에 녹아 있는 한국미를 발견한 데다 이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현지 뮤지션들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해마다 5월과 12월에 빠지지 않고 여는 디너쇼엔 심수봉과 같은 시절을 살았던 이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룬다. “어떤 관객은 노래를 편곡해 부르는 것도 싫어하세요. 예전에 듣던 그대로를 듣길 원하는 거죠. 제 노래를 듣고 삶 속에 호흡처럼 녹아든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기쁘다는 관객을 볼 때 ‘이게 가수로서 내 역할이구나’ 싶어요.”

다음 달 8일 디너쇼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다. 1544-1813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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