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10년 절필… 벼락처럼 다시 詩쏟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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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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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 詩낭송회

11년 만에 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출간한 최승자 시인이 28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 낭송회를 갖고 독자들과 만났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1년 만에 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출간한 최승자 시인이 28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 낭송회를 갖고 독자들과 만났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먼 세계 이 세계/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장자가 살았고/예수가 살았고/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먼 세계 이 세계”

시인 진은영 씨(40)가 차분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다. 최승자 씨(58)의 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의 표제작이다. 28일 오후 7시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 배움아카데미. 후배 시인의 목소리에 실려 최 씨의 시가 전달될 때 자리를 함께한 독자 70명은 숙연했다. 시인 최정례 씨(51)가 사회를 맡았고 최승자 시인과 진은영 시인이 작품을 낭송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낭독공감’ 행사였다.

최승자 씨는 1980, 90년대를 대표했던 스타 시인이다. ‘삼십 세’ ‘개 같은 가을이’ 같은 최승자 씨의 강렬한 시편들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정신질환 진단으로 투병하면서 최 씨는 시작(詩作)을 중단해야 했다. 경북 포항에서 외숙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병원을 오갔다. 문득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작스럽게’ 시를 쏟아냈다. 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은 11년 만에 출간됐다. 이 시집은 올 한 해 7쇄를 찍으면서 1만2000부가 나갔다. 시집은 초판도 소화하지 못하는 출판 현실에서 ‘쓸쓸해서 머나먼’의 선전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시인의 귀환을 알렸다.

최승자 시인은 이날 새 시집에 담은 주제의식을 묻는 독자들에게 ‘시간’에 대한 상념을 밝혔다. “‘한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은 武力(무력)일까 理性(이성)일까’… 제가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에서 뽑아서 오늘 갖고 온 이 시들은 모두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너머에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다른 의미’의 시간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는 시를 통해서 그 ‘다른 시간’에 대해서 탐구하고 싶습니다.”

그는 1989년 나온 시집 ‘기억의 집’에 실린 시 ‘詩(시) 혹은 길 닦기’를 낭송했다. “그래, 나는 용감하게, 또 꺾일지도 모를 그런 생각에 도달한다./詩는 그나마 길이다./아직 열리지 않은/내가 닦아나가야 할 길이다./아니 길닦기이다./내가 닦아나가 다른 길들과 만나야 할 길 닦기이다.”

투박한 음성으로 자신의 작품을 읽어내려 갈 때 시에 대한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읽혀졌다. 최 씨는 자리를 함께한 독자들에게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를 오래 기억해온 독자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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