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된 ‘그들’, 문학에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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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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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 사회 주제 소설-시집 출간 잇달아

이방인 아닌 가족관계 속 일상적 존재로 인정
피해만 입는 캐릭터 탈피 능동적인 모습 보여

《이번 주 출간된 한수영 씨의 장편소설 ‘플루토의 지붕’은 필리핀인 엄마와 아들이 주인공이다. 남편의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한 엄마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곧 철거될 동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에서 엄마는 그 동네에 사는 정육점 아줌마나 비보이 아버지(비보이를 꿈꾸는 소년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심신이 고단한 소시민으로 그려진다. 다문화 사회에 문학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우리 안의 이민자들을 문학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시와 소설이 잇달아 나왔다.》

지난달 출간된 구경미 씨의 장편 ‘라오라오가 좋아’는 40대 남성이 라오스인 처남댁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라오스에서 일하다 귀국한 뒤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중년 사내는, 한국 사회에 대해 소외의식을 갖는 처남댁과 동질감을 나눈다. 손홍규 씨는 장편소설 ‘이슬람 정육점’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다 서울에 눌러 살게 된 터키인 하산 아저씨가 고아 소년을 입양해서 키우는 모습을 그렸다.

최근 시집 ‘노래’를 낸 조인선 씨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시인. 경기 안성에서 축산업을 하는 그는 시에서 생활의 고단함뿐 아니라 이주민 아내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노래한다. ‘결혼하러 베트남으로 향할 때 여동생은 울었었다/ 집에 오니/ 아내는 한 장에 삼십오 원짜리 봉투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내색도 없이/ 가만히 옆에서 아내를 도왔다’(‘첫사랑’에서)

흥미로운 것은 다문화 사회에 대한 최근 문학의 관심이 ‘가족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라오라오가 좋아’는 남자와 처남댁, ‘이슬람 정육점’은 부자(父子)의 끈을 갖게 된 남자와 소년, ‘플루토의 지붕’은 필리핀인 이혼녀에게 청혼하는 남자 이야기다. 2000년대 초반 동남아 국가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이 나왔고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정치적 죄의식이 작용했고 외국인을 ‘타자’로만 여기는 인식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그림 제공 현대문학
그림 제공 현대문학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인 화두인 ‘디아스포라(이산)’ 문제를 의식하면서 한국이라는 두터운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인식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 평론가 김영찬 씨는 “최근 우리 문학은 그 경계 자체를 무화하고 있다”면서 “다문화 사회의 가족을 다룬다는 게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족은 한국인의 삶을 일상적, 심성적으로 유지해 주는 기초 단위인데 외국인을 가족으로 설정하는 최근의 소설들은 이주민을 ‘우리 안의 타자’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순혈주의가 강했던 한국사회만큼이나 한국문학의 경계의식도 두터웠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문화의 순결성이, 서로 섞이고 부닥치고 교환하면서 다른 삶의 양상이 전개되는 것에 대해 문학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적 테마”라고 전한다. 그만큼 다문화는 한국문학에 도전적이다.

특히 작품에서 이주민들을 피해만 보는 딱한 캐릭터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는 게 주목할 만하다. 전상국 씨가 ‘세계의문학’ 여름호에 발표한 단편 ‘드라마 게임’에서 필리핀인 며느리 체리안은 가족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라오라오가 좋아’에서 처남댁 아메이는 무기력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했다가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등 삶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라오라오가 좋아’의 작가 구경미 씨는 “이주여성 하면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그들을 피해자의 그물에서 끌어내고자 한 것이 작품 의도”라면서 “그저 복종만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 욕망이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를, ‘토착민’과 ‘이주민’ 간 동등한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바람을 소설에 담았다”고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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