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 한국학 연구자들인 마리아 알바레스, 하신애, 뉴샤오핑, 피에르에마뉘엘 루 씨(왼쪽부터)가 28일 오후 서울 연세대
교정에 모였다. 이들은 “특별한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다 한국학이 재미있어 공부를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 대전 처가에서 왔으니까 2시간밖에 안 걸렸어요.”
“이틀요.”
“저는 한 30분?”
약속 장소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을 묻자 이렇게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국적이 각기 다른 대학원생 4명이 28일 오후 서울 연세대 인근의 음식점에 모였다.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피에르에마뉘엘 루 씨(31·조선후기사 및 한중관계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 마리아 알바레스 씨(31·정치학), 중국 베이징대 뉴샤오핑 씨(26·한국근대사), 그리고 한국 연세대 하신애 씨(28·근대문학)다.
나이도 국적도 다르지만 모두 한국학을 연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29일∼7월 2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열리는 제6차 국제한국학워크숍에 참가한다. 세계한국연구컨소시엄이 주최하는 이 워크숍은 한국 개최가 이번이 처음. 8개국 19개 대학 대학원생 24명이 참가한다.
이번 워크숍 코디네이터인 김영선 연세대 HK연구교수는 “발표 논문 중 한국과 동아시아 관계, 영화 속 한국 등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가 많다. 선배 한국학자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세대들이 한국학을 평생 공부할 분야로 삼은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알바레스=아르헨티나는 한인 사회가 커서 한국 친구들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한국이란 나라가 궁금했죠.
루=소주의 힘으로 한국어를 배웠어요. 파리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 기숙사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었어요. 이후 중국 유학을 갔는데 거기도 한국인 유학생이 많았어요. 어울리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죠. 아내도 중국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이고요.
뉴=중·고교 시절 외국어를 선택할 때 전 한국어를 택했어요. 한국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보게 됐고, 대학도 한국학과로 진학했죠.
하=캐나다로 연수를 갔을 때 본 일인데, 외국 학생들이 ‘청산별곡’ 번역본으로 한국 문학 수업을 하다 ‘피리’가 ‘차이니스 플루트’라고 번역된 걸 보더니 이내 ‘청산별곡’이 한중관계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토론이 흐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해야 한국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잘 심어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연구를 하면서 한국이 독특하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루=애국심! 중국 유학 때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며 한국이 좋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들어서 ‘한국은 천국’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와보니까 뭐, 보통 나라더라고요.
알바레스=한국은 확실히 민족주의가 강해요. 아르헨티나는 이민자들의 나라고 역사도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애국심도 덜하죠. 박사학위 주제로 ‘한국 영화가 일제에 협력한 이들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택한 것도 한국의 민족주의가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한국학 연구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알바레스=아르헨티나에서 저는 한국학 연구 첫 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연구가 있어도 대부분 현대사 아니면 정치나 경제에 관한 연구가 많고 문학이나 역사 쪽 연구는 없어요.
뉴=중국은 반대예요. 한국학 연구 역사도 오래됐고, 연구하는 사람도 많아서 ‘이런 주제로 해볼까’ 하면 이미 다 논문이 나와 있더라고요.
―한국학에 한류의 영향도 큰가요.
루=프랑스에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몇몇은 한국 드라마 주제가를 휴대전화 벨소리로 해서 다닐 정도예요.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봐요.
알바레스=아르헨티나에서도 한류 영향이 커요. 특히 한국 영화의 인기가 많아요. 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와 ‘박하사탕’을 좋아해요.
하=‘오아시스’랑 ‘박하사탕’이라니, 한국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작품이잖아요.
알바레스=그래도 강렬하게 현실을 그려내는 작품이어서 좋아요.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도 재미있게 봤는데 한국사회가 역시 아르헨티나보다 보수적이라고 느꼈어요.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더라도 한국학으로 학위까지 받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 텐데….
루=문화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교량 역할을 했고, 그런 점이 흥미로워요. 프랑스에서는 중국과 일본, 한국을 모두 알면서 세 나라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 제가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일본사도 연구할 수 있겠죠.
뉴=한국과 중국은 역사가 비슷하잖아요. 강대국 침략도 받았고…. 그래서 근대사를 공부하고 있어요.
알바레스=저는 한국 민주화 과정과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상황과도 비슷하거든요.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 속에서 그런 보편적 경험을 끌어내려고 해요.
하=전 식민지 문학이 전공인데 어떻게 한국의 식민지 경험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고, 그래서 박사과정까지 하게 됐어요. 문학은 한국인들의 내면을 담고 있으니까 깊은 정서까지 전달하고 공감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각자 꿈이나 희망은 뭔가요.
알바레스=아르헨티나에서 한국학을 가르칠 거예요. 중국이나 일본 쪽 전공자들의 경우 유학한 나라나 미국에서 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 아르헨티나에 남으려고 해요. 아르헨티나에도 한국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거든요.
하=‘외국인이 왜 한국을 연구할까’라는 의아함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전 식민지 경험같이 무거운 역사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재미있어서 한다’는 말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에요.
뉴=전 사실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더는 새로운 분야가 없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오늘 와서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재미있게 연구하고 있는 걸 보니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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