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노래서 나를 위한 노래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8일 03시 00분


■ 1990년대 초 vs 현재, 대중가요 가사로 본 세대 문화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보다 더 진한 향기가. 너는 별빛보다 환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따사로와.’(신승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년)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 아 아 아 아 많이 많이 해.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많이 많이 해.(소녀시대 ‘오!’ 2010년) 1990년 스물두 살의 신인가수 신승훈은 직접 작사 작곡한 발라드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앨범을 100만 장 이상 판매하며 스타가 됐다. 이 노래는 서정시 같은 가사로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가요계엔 서정시 대신 소녀시대의 ‘오!’처럼 특정 가사와 멜로디를 수차례 반복하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나타나며
X세대 자유분방 가사 등장
직설 표현은 경쟁사회 대변
일회성 인간관계 세태 반영

대중가요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한 세대를 20년으로 볼 때 1990년대 초 젊은층에 인기를 끈 히트곡과 최근 히트곡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인기곡 가사를 통해 세대의 변화를 들여다봤다.

○ 성찰적 자아 vs 우월적 자아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그림자 아래서 젊은이들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으나 1990년대 초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젊은이들은 점차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듀스의 ‘우리는’ 등 겸손과 반성이 깃든 자아성찰적 가사는 그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뛰뛰빵빵’의 영어 표현으로, 저리 비키라는 뜻), 애프터스쿨의 ‘뱅!’ 등 과도한 자신감을 표현한 가사가 눈에 띈다. 비는 자신의 영어 이름 레인(Rain)을 하나의 이념으로 포장한 곡 ‘레이니즘’(2008년)을 내놓기도 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1990년대 초 젊은이들이 집단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역할을 찾으려 애쓴 세대였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과시해야 생존할 수 있게 됐다. 히트곡들의 가사는 이런 두 세대가 처한 대조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모 음악 평론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기점으로 랩 음악이 등장하고 자유분방한 X세대가 나타나면서 가사의 패턴이 급변했다”고 말했다.

○ 순정적 사랑 vs 육체적 사랑


인터넷 등을 통해 성(性)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확산되면서 가사도 선정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최근 비의 ‘힙 송’, 빅뱅의 멤버 승리가 솔로로 부른 ‘스트롱 베이비’처럼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노래들이 등장했다. 성인물에 이미 둔감해진 젊은이들을 자극하기 위해 가수들은 더욱 선정적인 가사를 들고 나온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사에 직설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 많아진 것은 사회가 급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젊은이들의 조급함을 반영한 것”이라며 “음반 제작자 역시 가요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팬들에게 빨리 가사를 전달하고 눈에 띄기 위해 자극적 표현의 강도를 점차 높인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간관계마저 일회적이고 도구적으로 변한 세태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 음미하는 서정시 vs 단순 반복 후크송

지난해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 티아라의 ‘보핍 보핍’, 샤이니의 ‘링딩동’에서 올해 슈퍼주니어의 ‘미인아’에 이르기까지 최근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은 후크송(hook song) 일색이다. 후크송은 듣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아 중독성을 유발하는 노래를 뜻하며 최근 국내 가요계에선 특정 가사와 멜로디를 수차례 반복하는 곡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20여 년 전 이현우의 ‘꿈’처럼 댄스곡에서도 시적인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과 대조된다.

1990년대 초가 LP, CD, 테이프 등으로 앨범을 하나의 작품처럼 음미하던 시대였다면 이제는 온라인에서 노래를 한 곡씩 MP3 파일로 내려받는다. 김작가 음악 평론가는 “음반을 통해 ‘완결된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휴대전화 벨소리나 연결음 등으로 끊어서 들으면서 노래에 담긴 ‘이야기(내러티브)’를 기대하지 않게 됐다. 이 때문에 가수들이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길 후크송을 양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음반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가요가 ‘대중 예술’에서 ‘소비 대상’으로 변모했다”며 “다양성 측면에서 후크송도 필요하지만 지금의 가요계가 개성을 잃고 후크송에만 쏠려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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