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적나라하게 드러난 세상의 맨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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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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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아해들/김종광 지음/352쪽·1만 원·문학동네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풍자적인 작품들을 발표해 온 소설가 김종광 씨의 단편 소설집. 첫 장부터 입심으로 끌고 가는 이야기의 힘이 느껴진다. 중간 중간 웃음을 터뜨리고, 여러 번 실소하고, 그러다 한숨도 쉬게 된다. 그가 이 사회의 모순들을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하지만 무척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족식’은 지방의 한 입시학원에서 벌어진 세족식 해프닝을 다뤘다. 학원 원장이 신문에서 한 대학 총장이 학생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는 세족식 사진에 감화를 받고 학원에서 그 이벤트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국어 선생인 강쇠가 얼떨결에 ‘홍보 및 기자 섭외’를 맡는다. ‘제자들을 섬기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보습학원에서 기획된 세족식 소동은 지방 소도시까지 뻗치고 있는 사교육의 현실을 반어적으로 풍자한다. 도시 최초의 개인교습학원 도입자인 원장 혈녀 선생의 캐릭터와 그의 제자이자 다시 이 학원의 강사로 입사한 강쇠의 캐릭터가 소설의 활기를 더한다.

‘당장, 나가버려!’도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운 단편이다. 지방 한 대학의 신입생 교양강좌의 풍경을 묘사한 이 소설은 수업 현장의 산만함을 별의별 수강생들의 태도를 통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과제를 내주는 교수에게 ‘글자 포인트란 게 뭐냐’ ‘블로그에 올리면 안 되냐’고 질문하는 새내기들. 수업은 안중에도 없이 스포츠 연예 관련 잡담에 열을 올리다가 화장실 가는 것은 꼭 교수 허락을 받으려 하는 대학생들. 말끝마다 욕설을 붙이는 대화에 익숙한 20대. 교수는 이런 학생들 앞에서 속으로 ‘순 돌대가리들. 컴퓨터가 발전할수록 애들 머리는 무한도전 깡통이 돼 가는 건가!’라고 분을 삼키며 절망한다. 작가는 지성의 요람이 돼야 할 대학 사회의 요지경을 거침없이 풍자한다.

인터뷰 형식으로 중국 여행을 다녀온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여행기를 담아낸 ‘시골사람 중국여행’, 세탁소에 맡겼던 옷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부의 이야기 ‘옷은 어디에?’ 등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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