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가로등도 졸고 있는’ 아련한 7080 서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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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추억의 서울’을 무대로 한 연극을 만나보자. 1973년 잠실이 섬이었던 시절을 무대로 한 서울시극단의 ‘순우 삼촌’(5월 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과 1985년 석촌호수 포장마차촌을 무대로 한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토너먼트’(25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다.

공교롭게도 두 연극은 서울의 변두리였던 송파 일대를 무대로 삼았다. 과거 잠실은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과 그 지류인 신천 사이의 섬이었다. 1971∼1978년 송파강이 매립되고 신천이 확장되면서 잠실은 섬에서 육지가 됐고 송파강의 일부가 석촌호수로 변신했다.

순우삼촌’(김은성 작·전인철 연출)은 잠실대교가 완성되고 송파강 매립공사가 한창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번안한 작품. 올해가 체호프 탄생 150주년이지만 그의 4대 장막 중에서 유독 ‘바냐 아저씨’가 집중적으로 무대화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이 작품의 전신인 ‘숲 귀신’(16일자 C7면)이 25일까지 공연되고 29일부터는 ‘자쟈 바냐’(러시아어 원제)가 공연된다. 5월 5∼8일에는 LG아트센터에서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이 이끄는 말리극장의 ‘바냐 아저씨’가 공연된다.

이 작품이 집중 조명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자연파괴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순우 삼촌’도 강남개발과 부동산투기 열풍에 의해 사라져버린 서울의 풍광을 끌어낸다. 1972년 잠실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신천나루, 철새와 맹꽁이 천지였던 한강 백사장과 습지들…. ‘4대강 사업’에 대한 최근의 논란을 환기시킨다.

유신시대의 어슴푸레한 풍경도 겹친다. 붉은 바탕에 옛 소련 국기를 상징하는 닻이 디자인돼 있다고 삼양 ‘뽀빠이’ 라면 제조 관계자들이 용공혐의로 조사받았던 사건과 1973년 7월 이소룡 사망과 8월 김대중 납치사건 등이다. 말로는 노동자 편을 외치면서 자본이 가져다주는 풍요에 무임승차했던 ‘강남 진보’의 위선에 대한 고발도 숨어있다. 2만∼3만 원. 02-399-1135

토너먼트’(한아름 작 서재형 연출)는 세계일류시민을 말하면서 정작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탈락한 사회적 약자에겐 무자비했던 1980년대 중반 서울의 풍경이 담겼다. 추억 어린 그 풍경은 LG아트센터 무대의 깊고 큰 어둠에 반쯤 몸을 감춘 채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외로운 가로등 불빛이 졸고 있는 골목길, 부서지는 달빛 아래 키 큰 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서있던 공터, 국기 하강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가슴에 손을 얹고 우두커니 서있던 사람들, 굉음을 울리며 날아다니던 성남공항의 전투기들, 단속반에 쫓기며 ‘두꺼비’와 닭발처럼 ‘마녀의 수프’에나 어울릴 놈들로 겨울추위를 녹여주던 포장마차….

확실히 이 연극이 환기하는 이미지들은 아름답다. 문제는 눈물에 젖은 배우들로 인해 그 풍경을 음미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봉 등정을 꿈꾸다 등반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택진(조한철)과 그를 사랑하는 진경(이진희) 커플을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들은 공연 내내 울먹이고 흐느낀다. 더 오를 곳 없는 정상을 꿈꾸다 더 내려갈 데 없는 바닥으로 떨어진 택진 가족의 비극은 분명 넓은 공감대를 지닌다. 하지만 관객이 울기 전에 배우가 먼저 우는 자기연민은 ‘슬픔의 포즈’에 불과하다. 가슴 먹먹한 진짜 슬픔은 눈물로도 씻어낼 수 없는 법이다. 4만 원. 02-2005-011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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